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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하게 묻혀있던 ‘밤의 역사’ 비추다

입력 : 2016-07-29 19:34:36 수정 : 2016-07-29 19: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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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회고록·일기·법률기록·속담 등 분석
산업혁명 이전 유럽·북미 대륙 밤의 풍경 담아
‘푹 자는게 보물’… 당시엔 특별한 의식 행해
문 단속후 기도 “모든 두려운 것으로부터 구원을”
로저 에커치 지음/조한욱 옮김/교유서가/2만8000원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로저 에커치 지음/조한욱 옮김/교유서가/2만8000원


인류 최초의 조상들은 해가 진 뒤 본능적으로 잠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밤이 잠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낮의 인간’이 서서히 진화한 것이든, 천지창조의 첫날부터 밤은 자야 하는 시간으로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든 인류 역사에서 밤의 휴식이 삶의 자연적 질서로 여기지게 된 것은 근대 초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잠을 위한 의식들을 개발해 갔고, 잠을 방해하는 어둠 속의 무수한 것들과 싸워야 했다. 산업혁명 이전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지중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밤에 일었났던 일들을 증언하는 편지, 회고록, 일기, 법률 기록, 속담 등을 분석해 추적한 책이 보여주는 밤의 풍경은 그렇다.

“푹 자는 것이 보물”이라 여겼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잠을 위한 정성스러운 의식을 따랐다. 어둠을 틈타 엄습하는 죽음과 범죄에 대한 공포가 지금보다 훨씬 컸던 때라 잠자리에 들기 위한 첫 의식은 집안의 모든 문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벼룩이나 빈대를 소탕하는 사냥을 벌였다. 헨리 8세의 ‘침실의 법령’은 장황하기까지 했다. 매일 밤 열 명의 시종이 암살범에 대비해 침대의 매트리스를 단검으로 찔러본 뒤 베개와 시트를 정렬했다. 기도가 빠뜨릴 수 없는 의식 중 하나로 정착한 것은 16세기였다. 기도는 밤의 해악으로부터 신이 보호해주기를 호소했다. 한 기도문은 “갑작스러운 죽음, 화재와 도둑, 폭우, 태풍 그리고 모든 두려운 것”으로부터 구원을 청하고 있다. 

부유한 가정을 대표하는 높은 침대의 호화로운 이부자리에 부부가 잠들어 있다. 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침대는 가정생활의 혁신을 반영했고, 가장 각광받는 대상이 되었다.
교유서가 제공
잠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침대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가구로 자리 잡았다. 고급 침대의 발전은 16세기 안락하고 편리한 가정생활의 혁신을 반영했고, 17세기에 이르면 침대는 가장 각광을 받는 대상이었다. 침대가 전체 재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집이 있었고, 상속인에게 가장 먼저 물려주는 유산이 되었으며 신혼부부들이 가장 먼저 구입하는 품목이었다. ‘침대 시대’라고 불릴 만한 시절이었다. 물론 이런 발전에서도 신분의 차는 어쩔 수 없었다.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여전히 누더기 같은 담요와 조잡한 매트리스로 고생했고, 많은 가정에서 그것조차 구할 형편이 안됐다.

침대가 “인류 최고의 회합 장소”로 불린 것은 흥미롭다. “식사 이외에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때로는 부유한 사람들도 집을 떠나면 다른 사람과 침대를 함께 써야” 했기 때문이다. 낮에 기대하기 어려운 친밀감을 형성해 낮의 인간관계에서 볼 수 없는 양상이 나타나는 것도 그래서였다.

엄격한 주종관계가 지배한 시절이었지만 침대에서는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일이 빈번했다. ‘영국의 불한당’이라는 책에서 여주인은 침대를 같이 쓰는 하녀에게 연인을 포함해 모든 일을 알려주었다. 여성이 자율성을 찾는 공간이기도 했다. 침대에서 아내는 다른 시간에는 적절치 않았을 관심사를 남편에게 표현했고,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드물긴 해도 남편에게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도 있었다. 하인들이 한 침대에서 잤기 때문에 동성애가 벌어지거나 사생아가 태어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 귀족 계급은 ‘공동 침대’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던 개인적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종교 지도자들도 목소리를 보태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가정의 도덕을 힐난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밤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고,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해가며 밤의 다양한 양상을 분석한 것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밤에 고조되는 육체와 영혼에 대한 위협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 통행금지와 야경꾼 등 밤시간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과 민간의 대응을 다룬다. 또 밤에 사람들이 일하고 놀며 드나들던 장소를 탐색한다.

책은 산업혁명 전 밤시간에 일어났던 일을 세밀하게 고증한다. 옮긴이가 밝히고 있듯 밤을 분석하며 거대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거나 뚜렷한 명제를 내세우지 않는다. 단지 밤 자체와 밤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사소한 기록들을 독자들의 눈 앞에 펼쳐 보인다. 책의 미덕으로 꼽히는 요소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의 양상, 사실들이 나열되는 것을 지루해 할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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