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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들 땐 어깨 펴고 후후후∼ 짧은 호흡에 담긴 위로의 숲

입력 : 2016-07-28 20:23:48 수정 : 2016-07-28 20: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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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 이야기 담은 조경란 ‘후후후의 숲’ 소설가 조경란(47·사진)씨가 짧은 소설 31편을 묶은 ‘후후후의 숲’(스윙밴드)을 펴냈다. 읽는 호흡이 짧아지는 추세에 맞춰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의 이야기 31개 꼭지를 담았다. 사랑, 가족, 우정, 세태 등 소재는 다양하다. 이야기들 밑바탕에는 공통으로 위로의 정조가 흐른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백수 청년은 그날도 면접에 떨어지고 갈 데가 없어 동네 공원에 온다. 그곳에서 만난 후줄근한 차림의 노숙자풍 ‘말테 선생’은 작은 게임 하나를 제안한다. 보리수나무 화살나무 이파리들을 일렬로 세워놓곤 후후 불어 멀리 보내는 게임이다. 숨만 잘 쉬어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니 여러모로 유익한 놀이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나무로 둘러싸인 그 작은 공원 안이 안전한 갈비뼈 안의 허파 같기도 하다. 작가는 지친 모든 이들을 향해 말한다.

“이따금은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어보자. 두려울 때 슬플 때 겁이 날 때 긴장될 때 그리고 외롭다고 느낄 때. 몸에 힘을 빼고 후후후. 그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돼도 너무 당황하지 말기 바란다. 여기 후후후의 작은 숲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엄마와 싸우고 가출한 진석이로부터 이모에게 엽서 한 장이 도착한다. 그 엽서는 녀석이 가출했을 때 ‘느린 우체국’에서 보낸 것이다. 그 우체국에서 보내면 일 년 후에 배달이 되는데 녀석은 제주도 수학여행을 앞둔 2014년 4월14일 그 엽서를 썼다. 진석이는 “여객선에서 심심하면 문자 메시지 보낼게. 안녕, 이모”라고 마지막 문장을 썼다. 슬픔만 위로하는 건 아니다. 백설공주가 죽으면서 유모에게 그네를 살린 일곱 번째 난장이를 찾아가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한 사연(‘백설공주 유모와 난쟁이’)도 있고, 두루미와 여우가 알려진 것처럼 서로 초대해 음식을 곤란하게 대접했지만 사실은 좋은 우정을 나누게 된 이야기(‘두루미와 나의 진짜 이야기’)도 지어 넣었다. 떠난 아이가 쓰던 왕관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엄마(‘엄마의 왕관’)나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아내를 설득하지 못한 채 뛰쳐나갔다가 중환자실에 누운 남자가 너무 늦게 알아버린 희미한 생의 빛에 대한 이야기(‘빛’)도 있다.

조경란은 “단편이나 장편으로 쓸 수 없던 아까운 이야기들을 지난 1월부터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썼다”면서 “짧은 소설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경이로운 결말이 가능한 자유로운 장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앞에 닥친 문제가 가장 큰 것처럼 보이던 서정적 시기는 가고 이제 나 혼자만의 힘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타자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서 “이러한 정서가 이번 짧은 소설들을 관통하는 중심 줄기”라고 덧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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