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작가 사하르 칼리파(64)는 최근 국내에 선보인 장편소설 ‘형상, 성상, 그리고 구약’(케포이북스)의 작중인물을 통해 이렇게 신에게 절규한다. 저항과 슬픔이 그치지 않는 땅에서 “죽음은 이제 더 이상 검은 유령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이 가련한 국가여!”라고 탄식한다. 이 소설에는 이처럼 비탄만 흐르는 건 아니다. 예루살렘을 무대로 무슬림 출신 이브라힘과 기독교 집안 딸 마리암의 유장한 사랑 이야기가 흘러간다.
팔레스타인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하르 칼리파. 그는 여성 문학의 관점보다는 아랍 세계의 모순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차원에서 작가적 면모가 더 빛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이처럼 황홀한 예루살렘은 사랑이 동반할 때에만 느낀 한시적인 공간이었다. 이별한 뒤 오랜 세월이 흘러 이브라힘이 다시 찾은 예루살렘은 대결과 살육의 황폐한 공간일 뿐이고 그들의 사랑은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터였다. 어렵사리 찾아낸 마리암과 그의 아들 미셸은 팔레스타인이 놓인 현실의 비극을 웅변하는 흘러간 사랑의 화석일 따름이었다. 요르단대학교에서 현대아랍어문학을 전공한 옮긴이 백혜원씨는 “사하르 칼리파는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그녀만의 진취적인 성향을 작품들에 반영했다”면서 “그녀는 소설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투쟁’이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기에 ‘내부인’의 시선으로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직접 겪은 고초와 현실적인 삶의 무게를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강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사하르 칼리파의 장편 ‘뜨거웠던 봄’도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함께 출간됐다. 예술가 기질의 형제 마지드와 아흐마드가 팔레스타인의 현실에서 어떻게 저항 투사로 변해가는지, 유대인 여자와의 사랑을 곁들여 핍진하게 끌고 가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결말부도 통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번역자 김수진씨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을 곡절, 또는 그 이상을 겪어버린 마지드의 변화에서 독자라는 제3자조차도 일정량의 슬픔을 나눌 수밖에 없다”고 썼다.
아랍권 최고 문학상 중 하나인 ‘나기브 마흐푸즈 문학상’을 수상한 팔레스타인 대표작가 사하르 칼리파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아이오와 대학에서 여성학 및 미국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꾸준히 소설을 발표했다. 1988년 나블루스 여성 가족 센터를 설립하고 현재까지 운영하는 중이다. 대부분 소설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많은 언어로 번역됐고 알베르토 모라비아 이탈리아 번역 문학상, 세르반테스 스페인 번역 문학상 등 아랍권은 물론 세계적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다. 사하르 칼리파는 지난 2009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의 장편 ‘유산’ 출간에 맞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해 “단기간에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이 작은 나라에서 큰 기적을 가꾼 한국인들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밝힌 바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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