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산동’(山動,The Mountain Moves,2015, 34x12x51cm, 적점토, 화장토, 타래쌓기, 흘림, 귀얄, 뿌리기) |
우리나라의 현재 문화 환경에서 전업 작가가 작업을 계속하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 나오는 것과 같다. 우리의 과거 도예문화는 매우 찬란하여 지금까지도 그 가치를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도예는 그 길을 잃고 있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일반인들의 현대도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개인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경제력과 지속적인 노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품이란 한 인간의 ‘고뇌하는 순수’와 ‘노동의 땀’이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표현되어 여러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품은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나 지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순수와 고독과 열정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쳐야 한다. 그러나 미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머리와 가슴은 구름 위에, 발은 땅을 굳게 딛고 있어야 한다. 이 지극히 상반된, 모순덩어리들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이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이다. 새로운 조형인데 낯설지 않은 것, 우연과 필연, 대비와 조화의 교차, 이러한 것들을 통해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을 공감하고자 한다. 이러한 화두로 꾸준히 공부해 나아가면 언젠가 자유와 자연을 그대로 드러낼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수환 ‘변화’(變化, 2007, 235x200cm, Oil on canvas) |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보는 사람에게 상상력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 게 하는 것이다. 그림은 최종적인 상태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문을 여는 것. 동양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는 깊숙이 스며 있는 적막이 있다. 동양의 영원성은 바로 이 적막이다. 그에 비하여 서양의 영원성은 존재의 확실성을 위한 것이다.
동양예술은 격을 존중한다. 참다운 것은 기이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에, 멀리 있는 것보다 근처에 있으며, 한 개의 돌멩이나 한 가닥의 흐르는 물에 있다고 본다. 평범한 몸짓, 붓의 흔적, 물질의 표정 같은 것이다.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에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고 행동은 간소하고 너그럽게 한다”는 글귀가 있다. 이 조용하고 깊은 경지가 중용(中庸)의 경지, 노(老)의 경지이다. 육체를 자연 속에 되돌리고 맑고 밝은 세계로 가는 것. 모양 없는 모양을 발견하는 경지라고 할까.
나의 그림의 궁극적인 고향은 논리적이 아닌 직관적인 표현, 알 수 없는 쓸모없는 기호적 표현, 의미 없는 기호를 보여주는 데 있다. 의미의 죽음을 통하여 자신의 운명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세계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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