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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영화인사이드] ‘부산행’이 보여준,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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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1 21:27:38 수정 : 2016-07-21 21: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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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자성어는 ‘각자도생’이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로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각자도생은 올해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더욱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정부나 이웃의 도움 없이 각자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제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경기침체로 글로벌 공조체제가 무너지자 보호주의와 고립주의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각자도생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영화 ‘부산행’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가 되는 긴급상황에서 부산행 KTX에 탑승한 승객들이 자신만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좀비, 재난 블록버스터다.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심, 군중의 이기심과 사회적 갈등, 그리고 가족주의로 이어지는 결말은 정통 상업영화를 표방한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그럼에도 ‘부산행’은 기존 상업영화와 다르다. 먼저 재난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능함이다.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로 변하는 재난상황에서도 정부를 믿고 기다리라고만 말한다. 어떠한 조치도 취해 주지 못하자 승객들은 결국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다. 시스템과 책임자가 부재한 모습에서 그간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여러 재난 상황들이 오버랩된다.

이기적 캐릭터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도 보인다. 주인공 석우(공유)는 오로지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딸 수안이 객실에서 노인을 돕는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자 혼란한 상황일수록 남보다 자신이 먼저라며 꾸짖는다. 대기업 상무 용석(김의성) 또한 극단의 이기심을 드러낸다. 본인의 목숨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부산행 승객들은 이처럼 자신부터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지만 끝내 공멸하고 만다.

‘부산행’은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돼 최고의 화제를 뿌렸다.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비판하는 작품성과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상업성을 함께 갖췄기 때문이다. 게다가 ‘돼지의 왕’과 ‘사이비’같이 전작에서 탄탄한 스토리와 강렬하고 섬세한 미장센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라 더 큰 기대를 모았다. 시사회 이후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유료시사회를 통한 변칙 개봉은 아쉽다. 이는 개봉 전부터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기 위한 홍보수단이다. ‘부산행’의 공식 개봉일은 20일이지만 15∼17일 유료시사회를 통해 이미 56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다가올 여름방학 성수기에 ‘제이슨 본’과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등 기대작들이 줄줄이 내걸린다는 점을 고려한 변칙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는 극장가의 상영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부산행’이 비판하는 또 다른 각자도생인 것이다.

‘부산행’은 혼란 속에서 이기심으로 점철된 인간성과 사회성을 생생하게 담아내면서 동시에 상업성을 지닌 수작이다. 마치 우리가 처한 현실을 마주하는 것 같아 가슴을 울린다. 각자도생에서 이타적 사회로의 복귀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영화다.

양경미 영화평론가·한국영상콘텐츠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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