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유보다 뿌듯한 내면의 포만감
얼마 전 장정일 시인의 ‘삼중당 문고’를 다시 읽다가 섬광처럼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시리즈물을 자나 깨나 시간 날 때마다 때로는 병적으로, 마치 인생을 건 듯이 게걸스럽게 읽어치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독서비결이구나 싶었다.
정여울 작가 |
삼중당 문고는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모든 이의 가슴속에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삼중당 문고는 문학청년에게 ‘아껴먹고 싶은 가장 맛있는 음식’처럼 소중한 이야기 보물창고였다.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독서는 바람직한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내면 무조건 서점으로 달려가던 시절의 풍경이 떠오른다. 어른이 돼서도 열혈 독자로서의 초심을 읽지 않은 사람이 끝내 작가가 된다. 이제는 서점에서 살 수 없지만, 마음속 삼중당 문고는 아련한 그리움의 거처가 됐다. 어린 시절 은밀한 쾌락 중 하나는 공부하는 척 참고서를 펴놓고 그 밑에 몰래 소설책을 숨겨놓고 읽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많이 깔려 있던 책이 바로 삼중당 문고였다.
기말고사가 끝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으로 달려가 그동안 못 읽었던 소설을 잔뜩 읽고 나서, 살뜰히 모은 용돈으로 소설책을 잔뜩 사들고 돌아오며 입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내가 이걸 수집하고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은 첫 번째 컬렉션이 삼중당 문고였다. 그 삼중당 문고가 내 마음속에서 ‘영혼의 이스트’가 되어 빵처럼 부풀어 지금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자라난 것이 아닐까. 책을 한 권 읽어갈 때마다 ‘내가 아는 세계’가 한 뼘씩 확장되는 느낌, 그것은 어떤 물질적 소유보다 뿌듯한 내면의 포만감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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