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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길을 묻다] 공인인증? 포켓몬고?…규제, 버리지도 챙기지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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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7-20 14:00:00 수정 : 2016-07-20 14: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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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규제개혁' 몸살…해법 없나 / 민생부문은 과감히 풀고, 국민안전·공익분야는 강화 필요
대한민국이 ‘규제 개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 분야 및 영역별로 다양한 규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어서다. 즉 기업과 재계 등은 경제와 산업 현장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철폐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선거운동 관련 규제를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국민 생명과 안전, 환경 등의 분야에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규제를 둘러싼 다양한 지형도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재계는 물론 정치권조차 “규제개혁” 목소리


“전체 1145개 세세분류 업종 가운데 정부 독점이나 지정, 면허, 인허가 등 진입규제가 있는 업종이 무려 593개이며, 이런 진입규제만 개혁해도 6만4000개 기업과 33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지난 4월7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진입 규제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이같이 주장하며 각종 진입규제 타파를 주장했다.

전경련은 이후에도 △대기업집단에 대해 27개 법률에서 60건의 규제가 존재(4월12일) △7대 갈라파고스 규제만 개혁하더라도 92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5월10일) △사업자가 기부채납 수준을 예측할 수 있도록 법 제도 정비(6월29일) 등 규제개혁을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지난 1월엔 대한상공회의소가 대한민국이 △사전 규제 △포지티브 규제 △규제인프라 부재라는 ‘규제 트라이앵글’에 갇혀 신사업에 장벽이 되고 있다며 규제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이처럼 각종 경제 및 기업관련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해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하고 있다. 김태연 대한상공회의소 규제혁신팀장은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규제와 사전규제 등이 많아 기업이 창의적인 역량을 발휘하긴 힘든 상황”이라고 규제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식석상에서 “규제는 암 덩어리이고, 물에 빠뜨려 살아남지 못하는 규제는 모두 철폐하라”고 규제 혁파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권조차 각종 선거에서 적용되는 정치인이나 정당, 일반 유권자들의 선거운동 규제의 철폐 또는 완화를 주장한다. 예컨대 현행 선거법은 유권자나 시민단체가 유인물을 나눠주거나(93조) 서명 운동조차 막고 있다(107조)고 비판한다. 일부는 정치자금법 완화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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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및 실생활 규제 개혁 논의는 미흡

각계에서 규제개혁 요구는 분출하지만 정작 국민 실생활이나 민생과 밀접한 규제개혁 목소리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야구장에서 생맥주를 파는 ‘맥주보이’ 규제 해프닝.

지난 4월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은 ‘술은 허가된 장소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주세법 규정을 근거로 맥주보이 규제 방침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통보했다.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맥주보이의 맥주 판매가 위생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서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등에서 맥주 이동판매를 다 허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여론도 규제방침에 비판적으로 형성되자 정부는 10일 만에 국민 편의 차원에서 맥주보이를 허용했다.

맥주보이 규제 해프닝은 우리나라에서 규제개혁 논의가 얼마나 헛돌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즉 원칙 없이 민원성으로 규제개혁이 제기되고 논의되고 있다는 거다.

더구나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나 공익을 기치로 경제 및 산업현장에 영향이 큰 법안을 잇달아 발의하고 있어 경제계의 ‘규제 개혁’ 요구와 정치권의 ‘공익’ 주장이 충돌하는 양상이다.

정치권은 벌써 소비자들의 효율적인 피해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다중 대표소송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과 기업의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도록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공공기관의 청년 의무고용 비율을 현행 3%에서 5%로 확대하고 이를 300인 이상 기업까지 적용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경제민주화’ 흐름을 주도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민주화는 기업을 옥죄는 게 아니다”며 “기업을 풀어주되 공정한 경쟁을 하는지를 감시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민생 분야는 과감히 풀되, 국민 안전은 확실히 챙겨야


하지만 규제개혁을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규제 자체를 백안시하고 무조건 없애겠다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즉 국민 생명과 안전, 의료와 환경, 공익성이 현저한 법률이나 규제는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거다.

국민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즉 독성 화학물질 취급을 둘러싼 규제가 여러 차례 수정 또는 완화되면서 누구라도 독성 화학물질을 수입해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어 판매해도 막을 법적 근거를 없애버려 국민 생명을 앗아갔다는 거다.

전문가들은 이에 규제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시대에 맞게 민생 분야를 중심으로 과감히 규제를 풀되, 국민 안전이나 공공 이익을 위한 분야에선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공인인증서를 통해 신분을 확인하는 이런 규제가 해외 어디에 있느냐”며 “대부분 국가가 저성장에 부딪히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규제개혁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떤 규제를 개혁하느냐가 중요하다”며 “공공 이익이나 안전 관련 분야는 엄격히 규제해야 하는 게 당연하고, 경제활동과 관련해선 구체적 행위 하나하나를 규제하기보다는 원칙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해외 규제개혁 사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주요국들은 경제활력을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시스템 구축, 기업 등의 애로해소 창구 마련, 규제완화 시범지구 지정 등 방법도 다양하다.

영국은 OECD 회원국 중 강도 높은 정책으로 규제개혁 성과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다. 영국 정부는 ‘규제비용 총량제’(one-in, two-out)를 도입해 새 규제 도입으로 늘어난 기업 부담 비용의 두 배를 상쇄하도록 기존 규제를 폐지한다. 규제 신설 때는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거쳐 기업 부담과 이익, 직간접적 비용 등을 파악하는 ‘규제영향평가’(impact assessment)도 실시한다. ‘레드테이프 챌린지’(red tape challenge)를 통해서는 기업과 국민들이 문제를 제기한 규제를 검토해 폐지한다. 규제영향평가가 신규 규제에만 적용된다면 레드테이프 챌린지는 기존 규제까지 개선하는 제도다. 영국 정부는 2014년 1월까지 3만건의 제안을 받아 3000여건의 규제를 폐지·개선해 기업 연간 부담을 8억5000만 파운드 감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부터 ‘탈규제’를 추진해 온 미국도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 규제개혁을 실시했다. 내용적 규제개혁보다 절차적 규제개혁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오바마 정부는 제도 개선 이상의 ‘규제 문화 변화’를 목표로 요구 사항의 간소화 및 언어의 단순화, 정보공개, 국민 참여 등의 내용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경우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성장전략에서 규제개혁을 핵심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전국단위, 지역단위, 기업단위로 나눠 개혁의 실효성을 제고한다는 방침이다. ‘국가전략특구’를 지정해 특정지역에 대한 집중적 규제완화도 실시한다. 개별기업이 신사업활동을 추진할 때 이를 가로막는 규제를 맞춤형으로 해결해주는 ‘산업경쟁력강화법’도 도입했다.

양금승 한국경제연구원 실장은 “일본, 미국, 영국 등은 ‘규제 완화’를 가장 효율적인 경제활성화 방안으로 보고 규제개혁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출·정지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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