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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 히틀러… 그를 독재자로 만든 책들

입력 : 2016-07-16 02:00:00 수정 : 2016-07-15 20: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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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W. 라이백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히틀러의 비밀 서재/티머시 W. 라이백 지음/박우정 옮김/글항아리/1만8000원


서평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네가 좋아하는 책만 소개하지 말라”는 핀잔을 가끔 듣는다. 그들은 서평이 실린 책을 보며 나의 관심과 기호를 확인했고, 그게 지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좋아하는 책만(!) 선택하지 않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소개한 책들, 특히 톱기사로 비중있게 다룬 책들 중에는 주관적인 관심이 작용한 것이 꽤 된다. 책은 그것을 읽고, 소장한 사람의 취미, 관심사, 습관 등을 드러내고, 그 사람이 만들어가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집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히틀러. 그는 1만6000여권의 책을 소장했고, 전쟁을 지휘하면서도 책을 읽었던 독서광이었다.
기자의 책에 대한 관심이야 신문의 지면, 독자의 선택에 일정한 영향을 주는 정도겠지만 최고 권력자라면 어떨까. 해당 국가의 국민들, 넓게는 전 세계인들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을 바꿔놓지는 않을까. 

아돌프 히틀러는 1만6000여권의 책을 소장했고, 전쟁을 지휘하면서도 밤에는 책을 읽었던 독서광이었다. 그가 읽었던 책은 정책에 반영됐고, 세계사에서 가장 큰 전쟁을 일으켰으며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극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현존하는 히틀러의 책 가운데 정서적 혹은 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을 골라 히틀러의 정책, 2차 대전, 홀로코스트 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히틀러라는 인물을 추적해 간다. 

50번째 생일을 맞은 히틀러가 나치 지도자들이 선물한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상등병이던 히틀러는 4마르크를 지불해 막스 오스보른의 베를린 건축 안내서 ‘베를린’를 구입했다. 참전병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으로 술이나 담배 혹은 여자가 아닌 책을 선택한 것은 “품위와 아름다움이 파괴되어버린 그 세상에서의 간접적인 탈출이자 미적 초월행위”로 볼 수 있다. 히틀러는 책의 곳곳에 손자국, 얼룩 등을 남겼는데 저자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오랜 열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히틀러의 서재에는 그의 수채화 6점을 묶은 책도 있었다. 

36살의 히틀러가 생애 처음 구입한 뮌헨의 아파트에서 사진을 찍었다.
글항아리 제공
히틀러 스스로 자신의 ‘바이블’이라고 부르고, 국가 정책의 교본으로 삼았던 책은 매디슨 그랜트가 쓴 ‘위대한 인종의 쇠망: 유럽 역사의 인종적 기초’ 1925년도 독어 번역판이었다. 200쪽이 채 안 되는 이 책은 ‘인종의 신체적 근거’, ‘인종과 거주지’, ‘북유럽 인종의 조국’ 등으로 장을 나누어 북유럽 인종이 유럽, 아시아의 상당한 영역을 지배했으나 수적으로 많았던 ‘열등한 민족’과 피가 섞인 뒤 추락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전제된 결론에 맞추기 위해 역사를 선택적으로 인용하고, 비과학적 자료에 의지해 “잔인하고 강력한 인종주의적 감정을” 쏟아낸 이 책은 히틀러가 인종을 바라보는 틀을 형성했다. 그랜트의 책에서 “히틀러는 자신이 느낀 것과 비슷한 걷잡을 수 없는 인종주의적 감정을 발견했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 정치적·사회적·군사적 안건에 새겨넣었다.

히틀러가 열심히 읽었던 ‘베를린’과 ‘슐리펜: 독일 국민을 위한 그의 삶과 성격 연구’.
히틀러의 서재에서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거나, 우생학(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 관련 책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파울 라가르데의 ‘독일인 편지’는 유대인을 ‘역병’이라고 칭하고, “물로 전염되는 이 역병을 우리 강과 호수에서 박멸해야 한다”는 끔찍한 주장이 등장한다. 100쪽이 넘는 곳에 남겨진 연필 자국은 히틀러가 이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를 보여준다. 우생학 관련 책인 한스 귄터의 ‘독일 민족의 인종적 유형론’, ‘인종 위생’을 위한 안내서 등도 관심을 기울여 읽었던 책이다.

물론 책 하나만으로 한 사람, 그 사람이 만들어간 현실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힌트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히틀러가 책을 읽을 당시의 사건, 사고, 주변의 사람을 소개하고 그 책에서 영향을 받았을 말과 행동 등을 기술해 히틀러와 히틀러의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퍼즐 조각을 제공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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