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강호원칼럼] 중국은 다시 생각해 보라

관련이슈 강호원 칼럼

입력 : 2016-07-11 21:35:58 수정 : 2016-07-12 14:46:5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드 반발’은 단견
사드 없는 한반도
그다음은 무엇일까
한·일 핵 무장
바라지 않는다면
사드 갈등 잠재우고
북핵 제거에 나서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두고 중국에서 나오는 말이 거칠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런 말을 했다. “그 어떤 변명과 해명도 창백할 뿐이다.” 창백(蒼白)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아무 소용 없다’, ‘무력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배후의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월 서울 방문 때 “항장검무 의재패공”(項莊劍舞 意在沛公)을 말할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항장의 칼춤은 패공 유방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라는 초한쟁패 때 나온 고사. 그는 이 말로 한반도 사드가 중국을 노린다는 것을 빗댔다. 중국 국방부도 발끈했다. “국가의 전략적 안전과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했다. 무슨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일까.

예견된 반응이다. 하지만 파고가 높다. 격랑은 또 밀려들고 있다. 히스테릭한 반응에서 불길한 변화의 기미를 엿보게 된다.

강호원 논설위원
따져야 할 것이 있다. 평화를 산산조각 낸 장본인은 누구인가. 북한이다. 서울, 도쿄, 괌은 북한의 핵 공격 사정권에 놓였다. 우리나라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어찌 해야 하는가. 때리면 맞아야 하는 샌드백 처지를 방치해야 하는가. 사드가 무엇인가. 핵미사일 공격을 막을 방패다. 사드를 한반도에 두기로 한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인과를 따진다면 북핵이 인이요 사드는 과이며, 본말을 따진다면 북핵이 본이요 사드는 말이다. 사드는 모든 공격을 막을 절대 방패도 아니다. 갑갑한 쪽은 그것으로라도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나라다.

그쯤은 중국도 모를 턱이 없다. 그런데도 “칼을 휘두르는 강도를 막지도 말라”고 하는가.

이런 물음을 던져 본다. 중국이 쏴 올린 첩보위성은 대체 몇 개이던가. 세상 모든 것을 보는 ‘천개의 눈’은 사드가 아니라 개미 움직임까지 감시할 수 있는 첩보위성이다. 위성기술의 진보를 놓고 보더라도 사드는 낡은 방호 체계다. 사드가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쟁점화했기에 시끄러운 것 아닌가.

왕이 부장은 그제 한국을 “친구(朋友·펑여우)”라고 했다. 시진핑 주석도 그렇게 불렀다. 한국도 중국을 적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곤경에 빠진 이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웃 나라야 죽든 말든, 망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사드를 걱정한다면 북핵을 폐기하고자 했어야 한다.

감시 반경 600㎞인 사드에 집착하는 중국은 어찌 비칠까. 패권주의자로 바라보지 않을까. 패권을 앞세우면 믿음은 옅어진다. 중국 인민일보도 논평을 쓰지 않았던가. “덕에 의지하면 성하고, 힘에 의지하면 망한다”고.

전도된 본말은 재앙을 부르는 씨앗이다. 그 재앙은 중국에 미친다. 북핵을 제쳐두고 사드만 문제 삼는다면 대한민국은 어찌 해야 할까. 길이 많지 않다. 외부에서 감히 공격을 엄두내지 못하도록 절대무기를 보유해야 하지 않을까.

핵무장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어디일까. 미국 과학자협회장 찰스 퍼거슨은 올해 초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수백개의 핵폭탄을 만들 분량의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단기간 내 수십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은 더하다.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 핵재처리 시설에는 플루토늄이 매년 산처럼 쌓이고 있다.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변신하고자 한다. 그 미래는 무엇인가. 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안보 지형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핵무장한 한·일. 중국에는 재앙이다. 아무리 대국을 소리쳐 외쳐도 인민해방군은 종이호랑이로 변할 수 있다.

핵탄두로 대리전이라도 할 듯 시늉하는 북한. 중국을 위한 걸까. 중국에는 도움이 될까.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중국에 재앙을 몰고 올 독버섯이다. 시 주석도, 왕 부장도 그쯤은 알고 있을 듯하다. 그러기에 한국에 더 깊은 믿음을 가졌던 게 아니던가. 중국은 좀 더 포용적으로 한반도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 알량한 사드를 두고 보복을 말할 때가 아니다.

조선의 대유(大儒) 퇴계 이황은 말했다. “태평이 극에 이르면 반드시 난리 날 징조가 나타난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으면 배는 문득 풍파를 만나 뒤집힌다.” 제갈량은 이런 말을 했다. “담박한 마음으로 뜻을 가다듬고 멀리 내다보라.”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친구를 걱정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중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