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걸핏하면 '욱'… 당신은 분노하고 있습니까?

입력 : 2016-07-03 21:41:36 수정 : 2016-07-04 02:41:1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욱!’하는 당신… 혹시 ‘분노조절장애’? / 치미는 ‘화’ 때문에 괴로운 현대인
'
‘아빠 들어올 시간이다!’ 저녁 식사 후 시곗바늘만 바라보던 아이들이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면 곧이어 초인종이 울린다. 직장인 A(53)씨가 퇴근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다. 현관을 들어선 그는 “아빠가 들어왔는데도 인사도 안 해!”라며 소리 친 뒤, 아내에게 ‘밥 좀 차리라’며 짜증을 낸다. 퇴근 후에 늘 집안 분위기를 ‘공포’로 만드는 A씨 탓에 아내와 자녀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하지만 A씨에게도 사정은 있다. 과중한 업무, 상사와 부하직원과의 관계 등으로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에서 ‘성질대로’ 하기에는 그동안 쌓은 ‘좋은 사람’ 이미지가 깎일까봐 두려워 집에 돌아와 엉뚱한 분풀이를 한다.

‘노여움’을 표현하는 것은 다른 감정을 내보이는 것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감정이 극에 다다른 상황에서 ‘화났다’는 신호를 상대방에게 어떻게 줘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과도하게 화를 참거나, 화가 난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뒤늦게 분노를 표현하기도 한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엉뚱한 곳에 해소하거나 사소한 실수를 넘어가지 못하고 지나치게 화를 내는 경우,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는 경우, 아이에게 이유없이 잦은 짜증을 내는 경우 등도 모두 ‘분노조절장애’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2015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절반 이상이 ‘분노조절이 잘 안 된다’고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도 11%나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3년 493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화를 주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병원을 찾은 환자 가운데 질병으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경우는 1% 미만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하는 경우는 엄밀하게는 ‘충동조절장애’의 일종으로 화나 짜증, 일시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터뜨리는 증상을 말한다. 환자 대부분은 우울증, 불안장애 등 다른 정신과적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을 생각해 본 우울증 환자는 뇌의 전두엽(노란색)과 분노, 충동 등을 통제하는 변연계(갈색) 간의 연결부분(붉은색)이 가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붉은색이 점차 엷어지고 있는 모습.
삼성서울병원 제공
특히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40∼50대 중년 남성에게서 두드러진다.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경우가 많아 우울해도 우울하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인 화는 짜증, 불평, 불만 등으로 표현되거나 음주나 흡연, 사회적 관계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갑작스러운 분노는 각자 성격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남들에 비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면 폭력이나 폭언 등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욱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기대처럼 되지 않아 좌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확률이 높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린 끝에 자신도 모르게 원인과는 상관없는 상황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분노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증상이 일정 기간 꾸준히 나타난다면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뇌의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이마 쪽에 위치해 판단, 사고, 계획, 억제 등 고차원적인 뇌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일상 생활에서 욕을 하고 싶거나, 남을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이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성을 느낀다면 알코올 남용, 경미한 두부손상, 가벼운 뇌진탕 등에 의해 이 부분이 손상됐을 수 있다.

심한 정도의 분노조절장애 유병률이 미미한 상황에 이 같은 단어가 일상화된 데에는 현대인의 삶이 그만큼 고달프다는 의미일 수 있다. 특히 정신적 질환이 없는 대부분의 경우 ‘만만한’ 상대에게 억눌려 있는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욕구나 충동성을 정상적으로 통제하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여성이나 노인, 아동 등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상대를 대상으로 한 ‘분노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분노조절장애의 치료는 ‘쓰나미’같이 몰려오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문제가 없다’며 진단을 거부하거나 ‘내가 화를 내는 것은 ∼탓이다’며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 경우가 많아 치료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환자가 일단 병원을 찾게 되면 전문의는 상담 등을 통해 환자의 감정을 우선적으로 파악한다. 환자가 느끼는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는 동시에 혈액검사, 뇌파검사, 뇌영상학적 검사(MRI) 등을 통해 다른 질환은 없는지도 확인한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분노조절장애 환자는 좌절, 스트레스 등으로 내면이 황폐해진 경우가 많다”며 “단지 사회적으로 부적합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인 경우가 많아 이를 교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는 우울증 환자가 자살까지 고려하게 되는 이유를 밝혀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의학과 교수팀 등은 기능적 MRI를 통해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변연계가 분노, 화, 불안 등을 느끼면 흥분하게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불면증, 식욕저하, 감정 기복이 수시로 발생한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전두엽 기능이 저하된 경우가 많아 변연계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뇌신경의 연결성이 떨어져 자살 생각이 증가하는 것이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