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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인형·딱지·LP 음반… 손끝에서 살아나는 추억

입력 : 2016-06-28 20:56:54 수정 : 2016-06-29 08: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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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개인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한모(33·여)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종이인형’을 사서 오리기 시작한 것. 한씨는 평소 무엇이든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 홈베이킹, 리본공예, 미싱 등 다양한 분야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재료값 등 초기비용이 많이 들고, 전문가처럼 정교한 작품을 만들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다. 마땅한 취미를 찾지 못하던 그는 동네 서점에서 본 ‘종이인형 모음집’을 구매해 만들기 시작했다.

종이인형, 종이딱지, LP 등 잊혀진 ‘옛것’들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놀이방법 역시 복잡하지 않아 부모세대와 자녀와 함께 즐길 수 있다.
길벗출판사, 교보핫트랙스 제공
최근 20∼30대 젊은 연령대를 중심으로 종이인형, 종이딱지 등 ‘추억의 놀이’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은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옛 기억을 불러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사이트에서는 ‘종이딱지 800장 팝니다. 택포(택배비 포함) 만원’ 등의 제목으로 종이딱지나 종이인형, 구슬 등을 판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로 오랫동안 수집해 왔던 물품을 100∼200장 단위로 묶어 한꺼번에 판다는 글이다. 개수와 종류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조악한 채색에 유행이 지난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들을 과연 누가 살까 싶지만 ‘팔렸나요’라는 댓글이 달리기가 무섭게 동난다.

추억이 묻은 물건들을 찾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개인 소장 목적으로 구입한다. 그러나 어린 자녀를 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어린 시절 자신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자녀와 함께 갖고 놀며 ‘옛 기억’을 공유한다.

열살 딸을 둔 김모(40·여)씨는 “종이인형을 보자마자 옛날에 언니와 갖고 놀던 생각이 나 구입하게 됐다”며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던 딸이 이제는 함께 인형을 오리고, 옷을 입히며 논다”고 말했다.

종이 딱지나 종이 인형은 요즘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 인기를 끈 ‘컬러링 북’, ‘페이퍼 공예’ 열풍과도 맞닿아 있다. 종이인형이나 종이딱지는 반복되는 것에 쉽게 지루함을 느끼거나, 칼로 정교한 작업을 하지 못하는 아동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종이인형의 경우 선만 따라서 오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만들기도 쉬운 편이다.

또 종이인형 캐릭터들의 몸매가 유아체형에 가까운 일자 형태에 가깝고, 정면을 바라본 자세가 일반적이라 선이 복잡하지도 않다. 물론 난도는 인형의 옷이 화려할수록, 액세서리가 많고 다양할수록 높아진다. ‘사랑은 불루’, ‘금남의 집’, ‘미미의 차림옷’ 등 촌스러운 제목은 종이인형을 고르는 재미를 더한다.

손끝에서 재탄생된 추억은 다양한 놀이방법으로 새 생명을 얻는다. 종이딱지 놀이는 스마트폰 게임 등 각종 오락거리보다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기대할 순 없지만, 단순한 규칙만으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딱지에 그려진 별의 개수를 세어 많고 적음에 따라 승부를 내는 놀이가 일반적이다. 먼저 딱지를 양손으로 나눠 쥐고, 그중 한 손을 상대방에게 내민다. 상대방이 내민 딱지의 별 개수보다 많으면 이기는 것이다. 또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생기는 바람을 이용해 누가 더 딱지를 많이 넘기는지 겨룰 수도 있다.

촌스럽긴 하지만 ‘천하무적 멍멍기사’, ‘신밧드의 모험’ 등 과거 인기있었던 텔레비전 만화영화의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도 있어 어른들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자녀와 함께 딱지를 고르는 재미도 있다.

종이인형 역시 옷을 자르고, 입히는 과정뿐 아니라 완성된 인형과 옷을 보관하는 자체도 놀이가 된다. 내용물을 뺀 속옷 상자나 바구니에 종이를 오려붙이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관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끝으로 추억을 소환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듣는 추억’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다. 지난 18∼19일 양일간 열린 ‘제6회 서울레코드페어’에는 지난해보다 1000여명이 더 많이 몰려 8000여명이 참여했다. LP에 익숙지 않은 20∼30대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LP로만 들을 수 있는 특유의 소리나 독특한 패키지에 흥미를 갖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열광했던 음악이 담긴 LP를 모은다. 또 혁오밴드, 원더걸스 등 ‘요즘 가수’들도 잇달아 한정판 LP를 발매하는 등 복고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교보핫트랙스는 7월13일까지 ‘아날로그 소믈리에 LP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 ‘비틀스’, ‘아델’, ‘라디오헤드’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소개하고, 직접 고른 LP를 턴테이블에 올려 들을 수도 있다. 천윤석 교보핫트랙스 상품개발팀 과장은 “요즘은 음악을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시대”라면서 “다양한 세대가 직접 턴테이블을 만지고 아날로그 음악을 접하면서 음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모은 캐릭터 선별, 어른엔 힐링·아이엔 재미 선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옛날 놀이를 모아놓은 도서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출시한 지 한 달도 안 된 종이인형 모음집 ‘추억의 종이인형 오리지널’은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틀어 취미·실용분야 서적 순위에서 10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이 책을 엮은 안희정(40·여·사진)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포털사이트에서 ‘페이퍼돌’이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던 블로거였다. 그는 처음엔 수집한 종이인형 사진을 올려놓고,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점차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판매를 결심했다.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로 종이인형을 찾더라고요. 어느 날은 소아암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하루종일 아이 옆에서 간병을 하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따분하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만 하던 중에 종이인형을 발견했대요. 저한테 구입한 후 아이 옆에서 종이인형을 오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엄마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거야’라면서 애한테 말도 걸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이뿐만이 아니다.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종이인형 사달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던 30대 여성이 생활이 안정되자 가장 먼저 찾은 것도 이 종이인형이었다. 갑자기 부모님이 이혼해 늘 외로웠던 여대생, 치매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시어머니를 위해 구입한 며느리 등 종이인형을 찾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안씨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끝난 직후 본격적으로 종이인형을 모으기 시작했다. 과거 사촌동생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종이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경제위기 이후 예전에 흔했던 문방구를 발견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연히 종이인형마저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에서 우연히 종이인형을 파는 노점을 발견하고 한두 장씩 모으기 시작한 것이 벌써 170종이 넘는다. 수첩형, 판형 등 모양과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그는 “의외로 남성 고객도 많이 찾는다”며 “만화를 좋아하시는 남성들이 여러 가지 인형을 수집하다 종이인형을 발견하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의사, 방사선사 등 의료계통 쪽이나 미술학원, 유치원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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