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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내밀한 정서, 문학으로 소통하다

입력 : 2016-06-23 20:28:53 수정 : 2016-06-23 20:2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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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10돌 기념호·베스트 컬렉션 ‘물결의 비밀’ 출간 계간 ‘아시아’가 10주년을 맞아 아시아 각국의 ‘문학지도’를 특집으로 수록한 기념호를 통권 41호로 펴냈다. 이 문예지는 포스코 청암재단(이사장 권오준)의 꾸준한 후원을 받아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한글과 같이 싣는 체제를 유지해 왔다. 

사진 왼쪽부터 바오 닌(베트남), 고팔 바라담(싱가포르), 야샤르 케말(터키), 리앙(대만), 찻 껍찟띠(태국).
그동안 67개국 800여 작가들이 참여했고 1000여편의 아시아 시(340여편), 소설(160여편), 산문(480여편) 등이 소개됐다. 고은, 박경리, 박완서, 김윤식, 오에 겐자부로, 브루스 커밍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모옌, 옌롄커, 바오닌,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에드워드 사이드, 오르한 파묵 등이 주요 필자로 참여했다. 이대환 발행인과 방현석 아시아출판사 대표가 주도적으로 창간작업을 했고 전승희 전성태 이경재 정은경씨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물결의 비밀’은 그동안 ‘아시아’에 수록됐던 소설 100여편 중에서 편집위원인 문학평론가 정은경 원광대 교수가 선별한 12편이 수록된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작 아시아 각국의 문화와 그들의 정치사회적 환경, 나아가 내밀한 정서까지 알기는 쉽지 않다. 표제작은 국내에 장편 ‘전쟁의 슬픔’으로 소개된 베트남의 바오 닌(64) 작품이다. 아내와 아이를 홍수에 떠내려보낸 사내의 한숨과 고뇌가 짧은 분량에 시처럼 흘러간다.

“내가 둑에 나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내 아내, 내 아이, 그리고 이름 모를 여인이 늘 강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시간,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강물도 역사도 모두 변해간다. 그러나 내 생의 아픔을 수그러들지 않는다.”

혹독한 전쟁을 치렀고 참전까지 했던 바오 닌이 바라보는 베트남의 현재는 과거에서 아픔을 안고 흘러온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또다른 베트남 작가 레 민 쿠에(67)의 ‘골목 풍경’은 보다 직접적으로 베트남의 현재를 은유한다. 냄새 나는 비천한 골목이었던 곳은 살인자의 아들이 독일에 가서 벌어온 돈으로 멋진 2층 집을 짓고, 자본가의 하수인으로 일한 덕에 돈을 모은 또다른 남자 덕에 골목풍경은 그럴듯하게 변한다. 그렇지만 세든 외국인에게 아첨하고 늙은 아비마저 버리려는 삭막한 행태는 베트남 현대사와 중첩된다.

“당신 같은 사람은 지켜야 할 체면이나 명예가 없네. 있다면, 다른 사람을 속여 자기를 지키는 것만 있지. …… 이 양탄자 위에 길게 쭉 펴고 눕게. 내가 자네 얼굴을 철면피로 만들어 주겠네. 뻔뻔하고 살갗이 두꺼워져서 앞으로는 부끄러움을 모르게 될 거야. 얼굴이 내 발 뒤꿈치처럼 될 걸세. 도시 사람들이 뭐라 해도 자넨 흔들리지 않을 걸세.”

태국 작가 찻 껍찟띠(62)의 ‘발로 하는 마사지’는 통렬한 풍자를 담고 있다. 차관급 고위관료가 부정부패에 연루돼 전전긍긍하자 그의 상관이 은밀하게 ‘발마사지’ 집을 소개해 준다. 그 집에서 발로 하는 얼굴 마사지를 받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귀띔이었다. 과연 발에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짓밟히고 나오니 기자들 앞에 나서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게 수월해졌다. 문제는 일회용 마사지만으로는 평생 철면피가 될 수 없어 비싼 돈을 들여 종신용 철면피를 사야 한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작가 고팔 바라담(63)은 신경외과 의사 출신인데 획일화시키는 사회분위기에 저항하는 기묘한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특별한 약을 개발해 이를 몰래 상수원에 풀어놓음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장기(臟器) 공여에 적합해지고 차이가 없어져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 부를 축적해 나간다는 반어적인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92)의 ‘불 위를 걷다’는 사탕수수밭에서 벌어진 주술적인 이야기를 통해 필리핀의 어제와 오늘을 반추하는 모던한 스타일이다. 이밖에도 야샤르 케말(터키), 마하 스웨타 데비·사다트 하산 만토(인도), 츠쯔젠(중국), 리앙(대만), 남 까오(베트남), 유다 가쓰에(일본) 등의 작품이 수록됐다.

수록 작품을 선별한 평론가 정은경은 “아시아 문학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잘못 알기 쉽지만 내용이나 형식에서 모던한 작품들도 많다”면서 “외국 작품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는 진입장벽이 있는데 이 책에 수록한 작품들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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