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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취약한 어른 길러내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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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11 13:09:46 수정 : 2016-06-11 13: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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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자 정재승 교수, '알파고 이후 교육 방향' 진단

언어·수학 잘하면 "너 머리 좋구나"
상상력 풍부하면 "예술로 빠져라"
측두엽·두정엽 영역만 집중 편애
전뇌적 생각 유도하는 교육 절실
“대한민국은 뇌의 모든 부분을 ‘애정’하지 않는다. 측두엽, 두정엽만 각별히 편애하는 나라다.”

지난달 18일,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열린 ‘알파고 이후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 특강에서 뇌과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을 이같이 진단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는 좌뇌 측두엽 언어중추가 발달하거나 수학과 논리연산을 담당하는 두정엽 영역이 발달하면 ‘너 머리가 좋구나’ 라고 말하지만, 다른 영역이 발달하면, 가령 감각이 뛰어나고 자신의 생각을 그림이나 몸, 음악으로 표현을 잘하거나 상상력과 공상이 풍부한 아이에게는 넌 예술로 ‘빠져라’ 라고 말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다양한 뇌 기능 중 언어, 수학 등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주요교과에 쓰이는 한정된 기능만 발달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취약한 어른을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정 교수는 “측두엽에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빨리 잘 넣으려는 것도 부족해서 영어를 빨리 잘 넣으려고 공교육과 사교육에 엄청난 돈을 들이고, 두정엽에는 수학을 넣어서 일찍 발전시키려고 한다”며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내용과 훈련을, 심지어는 선행학습을 통해서 더 빨리, 실수 없이, 정확하게 시키려고 온 나라와 가정이 에너지를 투자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이들이 ‘머리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같은 교육은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 시대에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교육”이라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뇌 영역은 이제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보다 한수 위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현 단계의 인공지능은 감각기능이나 종합적 사고능력, 예술적 사고능력이 아직 인간보다 떨어져 있다. 유일하게 숫자와 언어를 논리적으로 잘 다루고 있다. 우리 교육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한수 위인 유일한 뇌 영역을 발전시키는 교육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취약한 어른을 길러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인간을 배우다가 인간을 능가하다

정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과학자 존 매카시가 60여년 전 처음 이름붙인 인공지능은 20세기에는 인간 뇌의 극히 일부 능력인 논리 연산 기능을 컴퓨터에 적용해 개발됐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알파고로 대표되는 ‘딥 러닝(deep learning)’을 통해 인간의 뇌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을 향상시켰다. 가령 20세기 인공지능은 복잡한 수학계산을 인간보다 잘 할 수는 있지만 남녀의 얼굴을 구분하는 일, 또는 감정을 의식하는 일 등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컴퓨터에 수많은 데이터를 겹쳐 주입해 관계를 파악하게 하고 그 기저의 내용을 추출해내는 방식을 적용하면서 ‘학습’을 시켰고 이후 인공지능은 급속히 발달했다. 인간이 어려서부터 수많은 사람을 보고 자라면서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보고 보편적 특징을 파악해 학습하고 깨우치며 남녀를 구분하듯이 인공지능이 스스로 남녀 얼굴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20세기 인공지능은 헛똑똑이였지만 지금은 판단의 주체가 된 것”이라며 “바둑에서 이기는 공식을 주입하지 않았지만 이기는 법을 스스로 깨우친 알파고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알파고의 ‘원조’격으로 컴퓨터 게임인 ‘벽돌깨기’를 소개했다.

2년전 과학자들은 딥 러닝 방식으로 만들어낸 인공지능에 게임 규칙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벽돌깨기 게임 상황에 집어 넣었다. 다만 벽돌을 깰 때마다 올라가는 ‘점수’라는 보상을 추구하도록만 만들었다. 인간이 보상, 쾌락 등을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그러자 인공지능은 공을 튕겨 벽돌을 깨면 점수가 올라가고 공을 빠드리면 점수가 깎이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게임하는 법을 배웠다. 훈련 2시간 만에 인간처럼 능숙하게 게임을 진행했다. 문제는 4시간 후였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과학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인공지능은 날아오는 공을 수동적으로 받아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의도하는 한 방향으로만 보내 벽에 아예 구멍을 뚫어버렸고, 벽층 위로 올라가버린 공은 천장과 벽층에 부딪히면서 벽돌을 빠르게 깨기 시작했다. 어느 게임 고수도 생각해내지 못할 기똥찬 ‘아이디어’였다.(동영상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1eYniJ0Rnk

◆“전뇌적 사고하는 교육…4차산업혁명 시대 절실”

정 교수는 “과거엔 인공지능이 인간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를 넘어서 인간 대신 상황판단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교육은 인공지능이 이미 발달한 뇌 영역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전뇌적 사고를 어떻게 발달시켜 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생각을 음악이나 소리, 몸, 색, 글로 표현하며 두루 뇌를 쓰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간 저차원적인 기능으로 치부한 감각기능을 발달시키는 한편, 복잡한 상황 속에 맥락을 이해하고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는 일을 할 때 발달하는 전전두엽 영역을 특히 발달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전두엽은 13∼18세때 가장 빠르게 발달하고 가령 학생이 두 시간동안 세 문제를 놓고 해결하려고 낑낑거릴 때 발달하는 영역”이라며 “우리나라는 거꾸로 이 시기에 두 시간동안 20문제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풀고 오답노트를 잘 정리해서 비슷한 유형이 나올 때 실수하지 않도록 할지 연습시키는 시스템”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이 교육을 받으면 학교에서 점수가 더 높고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사회에서 더 중요한 위치에 올라가지만, 정작 10대 때 의사결정하는 방법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는 셈”이라고 일갈했다.

네이처지 표지에 실린 잭 갤런트 UC버클리 교수가 그려낸 뇌지도. 네이처 제공
그는 또 전뇌적 사고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UC버클리 잭 갤런트 교수의 최신 연구를 소개했다. 그는 “잭 갤런트는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오는 어느 한 군데 화수분같은 뇌 영역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여러 영역이 관여하며 전뇌적 사고를 할 때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잭 갤런트는 최근 네이처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어떤 어휘나 개념을 말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파악해 각 피실험자의 ‘뇌 지도’를 만들어보니 연관된 어휘와 개념을 근방에 저장해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만 창의적 사고를 할 때는 전혀 상관 없어보이는 개념, 뇌에서 멀리 떨어진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돼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현상을 발견했다.

정 교수는 이를 토대로, “교육은 각 학생들에게 획일적 뇌지도가 아닌, 자기만의 뇌지도를 형성하고, 각자의 뇌 속에서 멀리 떨어진 영역을 활발히 연결시키도록 독특한 관점을 북돋아줘야 인공지능이 따라오지 못할 창의적 혁신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99번의 엉뚱한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한 번의 창의적 생각이 성공적인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인공지능으로 인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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