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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동왕자·선화공주의 사랑 연꽃으로 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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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6-03 10:00:00 수정 : 2016-06-02 21: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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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주·부여 여행
충남 부여의 궁남지에 연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궁남지는 7월이면 홍련, 백련, 황금련 등 다양한 연꽃으로 뒤덮인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서동 왕자)이 신라가 고향인 부인 선화 공주를 위해 만든 정원이다.
역사 여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떠나기 전 관련 내용을 알고 가야할 것 같고, 여행에서는 무엇인가를 꼭 배워와야만 할 것 같은 부담도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 역사 여행지 중 하나인 충남 공주와 부여에서는 이런 부담을 떨쳐도 좋다.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백제하면 한 번쯤 들어봤던 삼천궁녀와 무령왕릉에 대한 이야기를 자녀와 한 번쯤 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정말 삼천궁녀를 거느렸을까.’, ‘무령왕은 도대체 누구기에 무덤이 유명할까.’ 이 정도 질문만 가지고 떠나자.
충남 부여 궁남지 연못에 핀 연꽃들 옆을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다. 수련 등이 피기 시작한 궁남지는 7월이면 홍련, 백련, 황금련 등 다양한 연꽃으로 뒤덮인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이 신라가 고향인 부인 선화 공주를 위해 만든 정원이다.

◆삼천궁녀가 떨어진 낙화암?

백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삼천궁녀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거느렸던 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졌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낙화암은 부여 부소산성에 있다. 부소산성에서 산책길을 따라 20분가량 걷다 보면 도착한다. 부여를 지나는 금강의 별칭인 백마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절벽 위 암석이다. 낙화암이란 서글픈 이미지와 달리 풍경이 빼어나다. 여행객을 실은 돛배 한 척이 유유히 강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풍경에 취해 애잔한 백제의 역사는 잠시 잊게 된다.
충남 부여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백마강 전경. 백마강은 부여를 지나는 금강의 별칭이다. 낙화암을 자세히 보려면 부소산성보다는 돛배를 타고 강에서 봐야 한다.

낙화암을 자세히 보려면 부소산성보다는 돛배를 타고 강에서 봐야 한다. 낙화암에서 고란사 방향으로 10분 정도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온다. 배를 타기 전 고란사에 들리자. 약수로 유명하다. 의자왕이 사찰 뒤편에 있는 약수를 매일 마셨다고 한다. 신하들은 이 약수를 떠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약수 주변에 핀 풀잎을 위에 띄어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잎의 이름이 고란초다. 한 번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얘기에 늙은 노인이 약수를 많이 마셔 아기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선착장에서 돛배를 타고 부소산성을 바라보면 삼천궁녀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한 정자 백화정 아래로 낙화암 기암절벽이 튀어나와 있다. 기암절벽 아래로는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낙화암’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다.

낙화암은 백제의 멸망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삼천궁녀에 대한 얘기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당나라와 신라군에 쫓긴 백제 백성들이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어 이곳을 ‘타사암(墮死巖)’이라 불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 문인 김흔의 시조 ‘낙화암’에서 ‘삼천’이란 표현이 등장했는데 ‘많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고 현대 들어 대중가요 등에서 ‘삼천궁녀’란 표현이 등장했다.

◆무덤인지 몰랐던 무령왕릉

백제는 고구려에 밀려 도읍을 서울(한성)에서 공주(웅진)로 옮긴 후 왕들이 잇따라 암살당했다. 약했던 왕권은 무령왕에 이르러 강화됐고, 백제는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무령왕은 생전에 세운 공보다 무덤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은 백제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경주의 천마총, 황남대총 등 삼국시대 때 무덤들은 발굴된 유물 등을 기준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발굴 후 무덤의 주인을 특정할 수 없다 보니 대표 유물로 명칭을 지은 것이다. 반면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무덤이 무령왕릉이다. 더구나 무덤이 도굴되지 않아 백제의 뛰어난 기술을 알 수 있는 46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무령왕릉 등 무덤 옆을 여행객이 지나가고 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이 밝혀진 무덤이다.

무령왕릉의 무덤이 도굴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무덤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는 애초 고분군 동쪽 편의 4기, 서쪽 편의 2기 등 6기의 무덤만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무덤들은 도굴되거나 일제에 의해 파헤쳐졌다. 무령왕릉은 서쪽 편에 있던 2기의 무덤에 대한 배수로 공사를 하던 1971년 우연히 발견됐다. 일제 때 이곳이 무덤인지 몰랐기에 1400년 넘게 잠들어 있던 유물이 훼손되지 않고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특히 지석이 함께 출토돼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알 수 있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연꽃 핀 백제의 연못

공주 공산성은 고구려에 패해 한성을 내준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겼을 때의 도성이다. 의자왕은 부여에서 나당연합군에 밀려 공산성으로 피신한 뒤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지만 부하의 배신으로 항복하고 결국 당에 끌려가 생을 마감했다. 조선 때는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 때 한양을 떠나 머문 장소이기도 하다. 인절미의 유래도 이곳에서 나왔다. 피신한 인조에게 공산성 인근의 임씨댁에서 콩고물을 무친 떡을 진상했는데, ‘임씨가 만든 떡이 절미였다’는 얘기에서 임절미로 부르다 인절미로 바뀌었다고 한다. 공산성은 성벽을 따라 성을 한 바퀴 돌 수 있는데 진남루, 동문루, 공북루 등 조선시대 지어진 누각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공북루에서는 아래로 흐르는 금강과 건너편 웅진지구공원에 핀 각양각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룬 비경을 만끽할 수 있다.
충남 공주 공산성 성벽과 금강, 관상용 양귀비 꽃이 어우러져 비경을 이루고 있다. 공산성은 고구려에 패해 한성을 내준 백제가 공주로 도읍을 옮겼을 때의 도성으로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북쪽에 있는 누각 공북루에서는 금강과 건너편 웅진지구공원에 핀 각양각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룬 비경을 만끽할 수 있다.

부여에서는 백제 때 만들어진 인공연못 궁남지의 연꽃이 꽃을 피우고 있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서동 왕자)이 신라가 고향인 부인 선화 공주를 위해 만든 정원이다. 수련 등이 막 피기 시작한 궁남지는 7월이면 홍련, 백련, 황금련 등 다양한 연꽃으로 뒤덮인다. 화려하진 않지만 물 위에서 펴 고고함을 품고 있는 연꽃의 향연은 여행객들을 설레게 한다. 김세만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장은 “부여와 공주는 세계적으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중심으로 새롭게 각광받는 지역”이라며 “충남의 관광자원이 상품화되도록 여러 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주·부여=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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