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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오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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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30 21:56:39 수정 : 2016-05-30 2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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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사제의 정 안타까워
많이 알고 암기하는 것만으로
좋은 선생이 되지 못하는 법
억압 않고 생각을 열어주는 게
스승이 해야 할 참된 가르침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제 사람들은 “오월이에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수필가이며 시인인 피천득 선생의 오월에 대한 정의는 널리 유명해졌다. 그것은 이 시구가 의미하는 그대로 그만큼 참신하고 정곡을 콕 찌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대략 30일마다 새달을 맞지만 새로 맞는 달에 대한 정의(定義)가 거의 없는 형편이기에 필자의 은사(恩師)인 피 선생님의 이 표현처럼 각 달마다 멋진 말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굳이 오월에 피천득님을 은사라고 표현한 것은 이 오월이 은사라는 멋진 말로 대변되는 스승과 제자의 달이기 때문이다. 아니 본래는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를 위한 달이요,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을 의미하는 청춘의 달이요, 자녀를 키우느라 애를 쓰는 부모를 생각하는 달이지만 여기에 스승을 생각하자는 뜻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듯이 스승이란 말, 은사란 말을 들으면 가슴에 온기가 흐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과거엔 느꼈을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아니라고 말하는 분이 많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만큼 스승이 되기가 어렵고 또 제자도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스승은 제자를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치고 제자는 스승을 믿고 따르고 존경해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스승의 따뜻한 사랑(愛)과 제자의 돈독한 믿음(敬)이 서로 합쳐질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리라. 학식이 깊고 덕행이 높아 남의 모범이 되는 사람을 우리는 사표(師表)라고 하고 또 사부(師傅)라고 한다. 스승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사도(師道)라고 하고 스승한테서 받은 큰 은혜를 사은(師恩)이라고 한다.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는 분이 은사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요즘 스승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치려니 그들이 안 따라오는 것 같고, 제자들은 스승을 믿는 것보다는 휴대전화를 더 믿고 스승보다는 휴대전화와만 대화를 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믿고 의지할 데가 없다는 절망감에서 때로는 극단적인 행동이 나오기까지 한다는 것,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한심한 현상이 돼 버렸다. 그런데 혹시 우리 학교에 이런 현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가르치는 것을 보면 교사는 오로지 눈앞의 교과서만을 읽고, 문자나 글귀의 질문으로 학생을 책하고 설명이 산만하며, 학습범위를 넓히기에 급급해 천천히 연구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사람들이 본심에서 학문이 좋아지도록 인도하지 않으며, 또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 그 재능이 다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도 잘못돼 있으며, 학생이 배우는 방법도 바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학생은 학문이 좋아지지 않고 교사와 친하지 못하며, 학습의 곤란에 괴로움을 느낄 뿐 그 이익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처럼 학업을 끝내어도 마침내 학문을 버리고 말게 된다. 지금의 교육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마치 이 시대 우리 교육의 문제를 가장 핵심적으로 꿰뚫고 있는 듯한 이 말은 요즈음 이름난 교육학자의 말이 아니라 2000여년 전 한나라 시대에 편찬된 ‘예기’(禮記) 중에 ‘학기’(學記)에 나오는 말이다.

“학생의 잘못이 일어난 후에 이를 책망하고 금지하면 당사자는 이에 저항해 감당이 안 된다. 알맞은 때를 놓친 뒤에 가르치려 하면 학습에 힘만 들 뿐 성과가 없다. 이것저것 너무 많이 가르치려만 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져 순서대로 학습이 안 된다. 친구도 없이 혼자만 있게 해서도 외톨이가 되고 편협해진다.”

2000여년 전 사람이 어찌 오늘의 현실을 그리 정확히 내다봤을까. 그렇다면 그 해답도 있을까.

“스승이 학생을 잘 가르치려면 옳은 것을 가르치되 강제로 끌고 가지 않고, 힘을 부여하되 억압하지 않고, 생각을 열어주되 금방 도달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므로 학생은 저항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으므로 학생은 편해지고, 금방 도달을 강요하지 않으므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저항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잘 사고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예기’의 모범답안에 대해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그런 교육을 할 수 없다고 미리 단념하고 싶은 선생님도 있을 것이지만 스승의 책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오히려 스승의 보람과 기쁨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많이 알고 암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남을 가르치는 좋은 스승이 되지 못한다. 필히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이 힘이 달려 질문이 제대로 안 된다면 질문을 잘 듣고 대답해 주어야 한다. 대답을 해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어찌하겠는가.”

어린이 달, 청소년의 달, 스승의 달 오월이 가고 있다. 이제 내일이면 6월, 여름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어린이들이 학업을 더욱 힘들어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궁금증을 덜어주고 바른 학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교육목표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지만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의 책임이 소중하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어른들이 오늘 찬물로 세수를 한 번 해보자.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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