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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주민 '건강 불침번'…바다 위 종합병원 '병원선 24시'

입력 : 2016-05-30 19:02:23 수정 : 2016-05-30 23: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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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치과에 약국까지 선내 운영…방사선·초음파·적외선기기 탑재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는 섬 주민들은 작은 병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통이 한계에 이르러 육지 병원을 찾았을 때 “너무 늦게 병원에 왔다”는 대답에 주저앉아 울어야 했다. 거친 바다에 의지해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해 온 섬 사람들에게 의료시설을 이용한 건강관리는 전무했다. 의료복지라는 말은 꿈조차 못 꾸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요즘 섬은 더 이상 의료사각지대가 아니다. 병원선이 섬 주민의 ‘건강 불침번’ 역할을 하고 있다. 내과, 치과, 한방과, 임상병리실, 약국을 갖춘 병원선은 ‘바다 위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다.


기자는 28일 오전 8시50분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충남 병원선 501호’에 몸을 실었다. 정박지를 힘차게 출항한 병원선은 50여분을 달려 보령 삽시도 앞바다에 닻을 내렸다. 병원선에서 내려진 소형 보트는 삽시도를 향해 내달렸다. 바닷가에 나와 병원선을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의료진을 맞았다.

병원선이 항구에 직접 접안하지 않고 바다에 정박한 것은 간조나 만조에 상관없이 안정된 상태로 병원선을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3개 층으로 이뤄진 병원선 맨 아래층은 기관실과 숙소, 2층은 진료시설과 식당, 3층은 조종실이다. 2층 진료시설은 접수 및 대기공간, 내과, 치과, 한방과, 임상병리실, 방사선실, 약제실로 구분돼 있다.

병원선에 있는 의료장비로는 디지털 방사선진단장비, 자동생화학분석기, 초음파기기, 전해질분석기, 자동뇨분석기, 치과유닛, 치과방사선촬영기, 한방진료를 위한 적외선치료기, 레이저통증치료기 등이다. 공중보건의사 3명(내과, 치과, 한의과)과 간호사 3명, 의료기술직 2명을 비롯해 선장, 기관장, 항해사 등 직원 18명이 진료와 선박운영을 맡고 있다. 작은 종합병원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보트를 이용해 병원선에 도착한 주민들은 진료접수를 하고 질환에 따라 내과, 치과, 한방과에서 진찰과 치료를 받는다. 고령의 섬 주민들은 혈압, 당뇨, 근육, 관절 계통의 만성질환과 구강질환 환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혈액검사와 엑스레이 촬영 결과에 따라 의료진으로부터 질병의 호전이나 악화 등 진행상황을 설명받은 주민들은 병원선이 다시 오기까지 한달치 약을 받은 뒤 보트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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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지만 관광객들이 병원선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날도 친구가 운영하는 펜션에 2주일째 머물고 있다는 한 60대 부부가 근육통을 호소하며 병원선을 찾아와 치료를 받았다. 주민, 관광객 할 것 없이 진료비와 약값은 전액 무료다.

삽시도 주민 전봉철(84)씨는 “고혈압과 관절통증이 있지만 병원선 의료진으로부터 정기적인 관리를 받고 있어 아직은 (몸이) 쓸 만해요”라고 말했다. 전씨는 또 “병원선은 약만 싣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섬 사람들에게 위안과 격려를 주는 배”라고 전했다. 섬 노인들은 매달 병원선이 오는 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다.

병원선에서 진료가 이루어지는 동안 소형 보트는 계속해서 병원선과 항구를 오가며 섬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병원선은 섬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진료나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 안부를 묻고 바다 조업 현황, 바지락 작황, 자녀나 친지들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병원선에 근무하는 공무원들과는 섬과 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병원선은 물리적 진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섬 사람들의 마음이 치유되고 정이 피어나는 공간이다. 그래서 ‘치유와 위로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섬 주민 50여명이 진료를 받고 오가는 사이 병원선 내부에서 낮은 경적음이 울렸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병원선 한켠에 마련된 식당에 밥, 국, 몇가지 김치와 나물이 준비돼 있다. 각자 원하는 양만큼의 식사를 식판에 담는데 점심식사 시간이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진료시간을 늘리기 위해 의료진은 속전속결로 점심식사를 한다.

병원선이 대천항에서 멀리 떨어진 당진이나 태안지역의 섬을 찾을 때는 선실 맨 밑층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자며 2박3일을 배 위에서 보낸다.

오후가 되면서 비가 그치고 간조가 되자 병원선을 찾는 주민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기예보를 통해 날씨와 바다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오전에 서둘러 병원선을 이용하고 바닷일을 나갔기 때문이다. 멀리 망원경 너머로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는 어민들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충남 병원선 오종명(58) 선장은 “거센 바다와 갯벌에서 삶을 개척해 온 섬 주민들은 나이가 들어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고 웬만해서는 병원도 찾지 않아요. 한시가 아까운 섬 주민들의 마음과 건강을 생각하면 파도가 높아도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짜를 어길 수 없죠”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 김경순(66)씨는 “병원선에서 양방, 한방,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큰 병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육지로 가야겠지만 병원선 이용만으로도 평상시 건강관리와 약물치료는 충분하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충남 병원선은 출항 8시간40분 만인 오후 5시30분쯤 대천항으로 돌아왔다.

길이 38m, 폭 7.5m, 160t급 충남병원선 501호는 1년에 180일 이상 충남지역 29개섬을 순회하며 3957명 섬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전국에는 이 같은 병원선이 전남 2척, 경남 1척, 인천 1척 등 모두 5척이 운영되고 있다.

보령=김정모 기자 race121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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