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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어머니 청춘 망가뜨린 일본… 용서하기 힘들다”

입력 : 2016-05-30 06:00:00 수정 : 2016-05-29 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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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 딸 류완전씨
2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병원에서 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의 딸 류완전(63) 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어머니는 일본이 당신의 청춘을 다 망가뜨렸다고 했습니다.”

중국 내 한국 국적의 유일한 생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하상숙(88) 할머니의 셋째 딸 중국인 류완전(劉婉珍·63)씨는 지난 27일 병상의 어머니 옆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류씨와 거주하던 할머니는 지난 2월 계단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폐를 찔러 크게 다쳤다. 지난달 우리 정부의 특별이송작전을 통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이다. 병원 측은 이르면 한 달 후엔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꽃 같은 나이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할머니는 4개 국적을 갖고 있다. 1927년 충남 서산에서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태어난 할머니는 17세 때 공장에서 일을 시켜주겠다는 꾐에 넘어가 우한으로 끌려갔다. 공장 근로라는 미끼는 중국으로 가는 도중 ‘군인 위문’으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위문’의 실제 의미를 중국 땅을 밟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당시 17∼29세가량의 여성 20여 명과 함께 약 2년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2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하상숙 할머니를 딸인 류완전(왼쪽)씨가 간병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류씨는 “어머니는 60년 동안 당시 기억을 잊으려 하기보다는 나한테 계속 이야기해 줬다”며 “자신이 일본 때문에 평생 몸과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위안부 문제를 우리가 잊지 말고 계속 언급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광복 후 중국에 남은 할머니는 28세 때인 1955년 중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할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입국한 류씨는 중국인 남편이 데려온 세 딸 중 막내로 우한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류씨는 “딸 입장에서 어머니에게 상처를 준 일본을 용서하기는 힘들다”며 “일본을 대표하는 사람이 어머니 같은 피해자들에게 직접 와서 사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후 북한 여권을 취득해 중국에서 조교(朝僑: 중국 내 북한 국적 장기거주자)로서 살기도 했다. 할머니의 후원자인 김원동(73·서울 동작구 상도성결교회 장로)씨는 “할머니는 북한 여권을 갖고 국적이 조선으로 돼 평양의 군중대회 단상에서 김일성과 포옹한 적도 있다”며 “과거 북한에 간 일 때문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불안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200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해 2∼3년간 한국에 살다가 가족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이번 귀국에는 외교부, 여성가족부, 중앙대 등의 지원이 있었다. 류씨는 “한국 정부와 병원 의료진,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감사하다”고 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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