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박모(27)씨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지난달에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많을 때는 하루에 200통 이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해 바꾼 박씨의 휴대전화번호가 최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의 이전 번호였던 것이다. 박씨는 “기자와 검·경 수사관이라는 사람의 전화를 얼마나 받았는지 셀 수도 없다”며 “아니라고 해도 ‘이러시면 곤란하다’거나 ‘추선희씨 번호를 달라’는 등 막무가내였다”고 토로했다.
2년 전 휴대전화번호를 바꾼 회사원 박모(46)씨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박씨의 전화번호가 과거 한 유명 남성 아이돌그룹 멤버의 번호로 알려진 탓이다. 아직도 박씨는 ‘전화 좀 받아 달라’라거나 ‘사랑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하루 수 통씩 받고 있다. 그는 “도대체 그 멤버가 누구인지 인터넷으로 찾아보기까지 했다”며 “문자 세례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휴대전화번호를 새로 바꾼 사람들이 해당 번호의 원래 이용자로 오인당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모르는 사람이나 기관 등에서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에 시달리는 데 지쳐 번호를 다시 바꾸려고 해도 휴대전화 약정계약 등의 문제로 쉽지 않은 데다 보상받을 길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 번호 자체가 모자란 것은 아니다. 국내 이동통신번호는 산술적으로 1억개(10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 제한된 분량을 제공하면서 ‘번호 재활용’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정부는 국번호(중간 4자리) 첫 자리의 경우 112와 119 등 특수번호와의 충돌, 오인될 가능성을 우려해 0과 1이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향후 통일 등에 대비해 새 번호를 상당량 비축해 놓아야 해 결과적으로 수천만개의 번호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아이돌멤버의 번호로 오인돼 피해가 막심한 박씨는 “사업차 이미 많은 사람에게 번호를 알려줘 번호 변경이 곤란하다”며 “사업하는 사람이 자주 번호를 바꾸면 나부터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번호를 바꾼 직장인 이모(27)씨도 “새 번호로 오는 대출·불법도박 스팸 메시지가 공해 수준인데 휴대전화 단말기 약정계약 탓에 울며겨자먹기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홍인수 서비스팀장은 “명확한 귀책 사유를 따지기 어렵다”며 “통신사업자들의 경영 판단에 따라 해결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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