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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장가들의 맛깔나고 담박한 잡문 가치 재발견

입력 : 2016-05-27 21:02:59 수정 : 2016-05-27 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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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 지음/휴머니스트/1만5000원
문장의 품격/안대회 지음/휴머니스트/1만5000원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조선이 낳은 기라성 같은 문장가들이다. 낡은 사유와 정서를 담은 고문 대신 낯설고 새롭고 실험적인 문장에 도전했던 시대의 선각자들이다. ‘문장의 품격’은 정치와 사회를 진중하게 풀이하고 비판하면서도 해학과 품격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문장을 소개하는 책이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시인이자 산문가, 비평가였다. 허균이 1611년 귀양지인 전북 익산 함열에서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우리나라 식품사에서 중요한 문헌으로 꼽힌다.

“산해진미를 입에 물리도록 먹어서 물리치고 손도 대지 않던 옛날의 먹거리를 떠올리고 언제나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곤 했다. 이제는 아무리 다시 먹고 싶어도 하늘에 사는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인 양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글이다. 음식은 유가적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는 글감이다. 하지만 그는 “식욕은 특히 목숨과 관련이 깊다”며 추억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조선시대의 가치관으로 보자면 마뜩잖은 글이지만,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멋진 글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깨어있는 학자였던 박제가는 돈을 빌려 달라는 빈궁한 박지원에게 보낸 답장에서 “열흘간의 장맛비에 밥 싸들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되어 부끄럽습니다. 200닢의 공방(돈)은 편지 들고 온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술병은 일 없습니다. 세상에 양주(楊州)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라고 썼다. 양주의 학은 이것저것을 모두 누린다는 의미로, 돈은 꿔주겠으나 술은 줄 수 없다는 비유로 썼다. 그러면서도 박제가는 친구의 처지를 먼저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을 표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처럼 책에는 맛깔스럽고 담박한 문장들이 소개된다. 그간 조명받지 못했던 조선 문인들의 잡문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이 글들은 역동적인 시대의 변화상을 여실히 담아내고 있다. 200~300년 전 시대의 글임에도 지금의 독자들이 그 내용과 정서에 공감하며 글쓰기에 대한 세심한 시선과 신선한 충격을 느낄 수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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