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40주년 맞은 파리의 심판

미국 나파밸리 VS 프랑스 최고급 와인의 대결

파리의 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와인 미라클 포스터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한 포도농장. 농장주 짐은 역사에 남는 최고의 와인을 빚겠다는 일념으로 은행 빚을 빌려 파산 직전의 농장을 고집스럽게 끌고 나간다. 하지만 철부지 외아들 보는 이런 아버지가 못마땅해 사사건건 부딪힌다. 그러던 어느날 프랑스에서 온 한 남성의 제의로 보는 와인 테이스팅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하지만, 그 사이 온 정성을 기울여 양조한 화이트 와인이 모두 갈색으로 변해버리자 절망한 짐은 모든 와인을 헐값에 처분하고 양조장을 닫는다. 절벽 끝에 선 절체절명의 순간 파리에서 뜻밖에 통보가 온다. 자신이 빚은 와인이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을 모두 제치고 1등을 했다는 소식이다. 우여곡절 끝에 처분했던 와인을 되찾고 짐의 와인은 세계 최고 와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1976년 5월 24일 파리의 심판 현장. 출처=샤토 몬텔레나 홈페이지

2008년 개봉한 랜디 밀러 감독의 영화 ‘와인 미라클(원작명 보틀 쇼크· Bottle Shock)’의 줄거리입니다. 정말 영화같은 스토리지요.그런데 실화랍니다. 바로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유명한 ‘파리의 심판’입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네요. 파리의 심판은 세계 와인업계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린 사건이랍니다. 당시 파리의 와인 바이어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Steven Spurrier)와 패트리샤 갤러허(Patricia Gallagher)는 자신들의 와인숍과 와인 아카데미(아카데미 뒤 뱅)를 홍보하려고 독립 200주년을 맞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소규모 신생 와이너리들을 프랑스인에게 선보이는 단순한 이벤트를 기획합니다. 레드와 화이트 와인중 각각 캘리포니아 와인 6종과 프랑스 와인 4종씩을 와인 병을 가리는 블라인드로 테이스팅하는 방식입니다. 프랑스 최고의 와인 전문가 9명이 심사위원으로 나섰지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와 샤또 지스쿠르의 소유주,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와 수석 소믈리에, 프랑스 최고 와인전문지의 편집장 등이 그들입니다.

화이트 1위를 차지안 샤토 몬텔레나 1973 출처=샤토 몬텔레나 홈페이지

당시만해도 캘리포니아 와인은 그저 그런 싸구려 테이블 와인이나 만드는 와인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때입니다. 따라서 단 한명도 프랑스 와인의 압도적인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화이트는 부르고뉴 상급 생산자의 그랑 크뤼, 프리미에 크뤼였고 레드 와인도 보르도 그랑 크뤼 1, 2등급인 최고급 와인이었기에 결과는 뻔해 보였습니다.

파리의 심판 레드 1위를 차지한 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

하지만, 심사결과는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최고점을 준 와인은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모두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판명났습니다. 화이트1위는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Chateau Montelena) 1973, 레드 와인 1위는 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Stag's Leap SLV Cabernet Sauvignon) 1973입니다. 특히 화이트 부문은 샤토 몬텔레나 외에도 3위 샬론 빈야드, 4위 스프링 마운틴 빈야드가 차지하는 등 1, 3,  4위를 캘리포니아 와인이 휩쓸어 심사위원들은 경악을 금지 못합니다. 스택스립도 2위 샤토 무통 로칠드,  3위 샤토 몽로즈, 4위 샤토 오브리옹 등 유명한 그랑크뤼 1등급 5대 샤토들을 물리쳤기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파리의 심판을 다룬 당시 타임지 기사

이 대회를 유일하게 지켜 본 기자 조지 M. 테이버는 2주 뒤에 타임(TIME)지에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고 변방이던 캘리포니아 와인이 단숨에 세계 와인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됩니다. 영화 원작명을 ‘보틀 쇼크’로 붙인 이유가 이해됩니다. 
이때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가 바로 영화 와인 미라클의 주인공이랍니다. 창업자이자 오너는 짐 배럿(Jim Barrett) 인데 그는 한국전쟁때 해군중위로 참전해 우리와도 인연이 있답니다. 

1986년 파리의 심판 재대결에서 레드 1위를 차지한 하이츠 셀러 카베르네 소비뇽

프랑스 와인업계는 이런 충격적인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답니다. 그래서 파리의 심판 10주년인 1986년 재대결이 성사됐답니다. 와인 스펙이터(Wine Spectator) 주최로 파리의 심판에서 경쟁한 10개 와인을 똑같은 빈티지로 다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였습니다. 레드와인 1위는 하이츠 마르따스 빈야드 1970이 차지했답니다. 30년이 지난 2006년 다시 똑같은 빈티지의 와인을 놓고 재대결이 벌어졌습니다. 프랑스 와인은 수십년 장기숙성될수록 맛과 향이 더 좋아지는데 1976년 당시 대회에 나온 와인 1970년 빈티지로 너무 영한 와인이었다는게 재대결의 이유였습니다.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레드와인만 대상으로 했는데 결과는 프랑스 와인의 참패입니다. 1위 리지 빈야드 몬테 벨로 1971, 2위 스택스 립 와인셀러 1970, 3위 하이츠 마르따스 빈야드 1970, 4위 마야카마스 1971, 5위 끌로뒤발 1972로 1∼5위를 모두 캘리포니아가 휩쓸었답니다. 

파리의 심판때 샤토 몬텔레나 와인을 들고 직접 참여했던 보 배럿(Bo Barrett) 샤토 몬텔레나 오너 출처=사토 몬텔레나 홈페이지

샤토 몬텔레나는 파리의 심판 40주년을 맞아 오는 24일 샤토를 개방합니다.미국의 와인 산업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된 파리의 심판에 감사하는 행사라고 하네요. 샤도네이 와인을 무료로 제공하고 스텍스립 와인셀라와 함께 미국의 와인산업을 돌아보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 예정입니다.  나파밸리 와인을 전세계의 중심에 서게 한 파리의 심판에 감사하는 일종의 오마주인셈이지요.

파리의 심판 40주년 기념 행사 안내. 출처=샤토 몬텔레나 홈페이지

한국에서도 서울 압구정동 뱅가에서 파리의 심판 40주년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뱅가는 와인 스펙테이터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 어워즈’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5회 연속 수상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같은 빈티지는 아니지만 파리의 심판에 나왔던 샤토 몬텔리나, 스택스립 SLV, 하이츠 와인셀라 등이 선보이는 만큼 4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네요.

최현태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