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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나를 찾아… 입양인들이 돌아온다] 뿌리 찾아 왔는데… 미로 같은 친가족 찾기

입력 : 2016-05-09 18:39:12 수정 : 2016-05-10 1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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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철회된 민호 대신해 기관서 '대타' 만들어 해외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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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5년 전 스위스로 입양된 김민호(가명·36)씨는 수소문 끝에 입양기관에 입양 전 주소가 남아 있음을 알게 됐다. 여러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주소를 추적한 김씨는 자신을 보육원에 맡겼다는 외할머니 B씨의 소재를 알아냈다. 처음으로 피붙이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찾아 간 B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잘못 찾아왔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등을 떠밀었다. 김씨나 B씨 모두 어안이 벙벙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B씨는 시집도 안 간 딸이 덜컥 아이를 낳자 딸의 앞날이 걱정돼 두 살배기 외손자를 몰래 입양기관에 맡겼다. ‘김민호’라는 이름의 아이는 곧장 스위스로 입양 결정이 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민호 외할아버지는 아이를 찾아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자 다급해진 입양기관은 다른 아이를 민호로 둔갑시켜 스위스로 보냈다. 이름까지 바뀐 채로 해외 입양길에 오른 아이가 바로 김씨였던 것이다. 평생 자신의 이름을 김민호로 알고 살아온 그는 어이가 없었다. 김씨는 “얼마 후 ‘진짜 김민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커져 만나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B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민호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해 무산됐다.
#2. 갓난아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켈리(가명·30·여)는 국내 입양기관에 남은 기록을 추적한 끝에 최근 30년 만에 생모를 찾았다.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새 가정을 꾸린 친어머니 A씨는 입양기관으로부터 켈리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심 끝에 만나기로 결심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에다 숨기고 싶은 과거였지만 입양된 혈육을 보듬어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남편과 두 딸, 시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지만 A씨 결정을 존중하기로 하고 모녀 상봉의 자리에 동참했다. A씨와 켈리는 서로 눈물 범벅인 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두 사람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으로 판정됐기 때문이다. 입양기관의 기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다. 충격과 좌절감에 폐인처럼 지내던 켈리는 석 달이 지나 다시 힘을 내 자신이 태어났다는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친어머니로 알고 지냈던, 꿈만 같았던 일주일을 떠올리며 연락한 A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실한 기록, 있는 정보도 접근 어려워


1980년대에 입양된 켈리와 김씨의 사연을 보면 당시 해외입양이 얼마나 허술하게 무차별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입양을 보내는 데 급급해 아동의 나이와 부모, 출생지, 최종 거주지 등의 기본 정보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아예 다른 아동의 정보와 바꿔치기하는 등 기록 자체가 부실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게 중론이다.

보건복지부가 2011년 발간한 해외입양 줄이기 종합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해외입양에 대한 행정규제가 대폭 완화되며 아동 확보를 위한 입양기관 간의 과당 경쟁이 발생했다. 한 입양기관에서 재직했던 K씨는 “1980년대까지는 해외입양이 무차별로 진행됐다”며 “기록에 대한 의식과 제도가 모두 미비했던 만큼 입양인 전체의 절반 이상은 제대로 남아있는 기록이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입양인들의 핏줄 찾기는 겹겹의 장애물이 놓인 미로일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접촉하게 되는 입양기관들이 대부분 정보공개 제도를 최대한 소극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게 첫 번째 걸림돌이다. 입양특례법에는 입양인이 입양정보 공개를 요청할 경우 친부모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다. 입양인의 형제나 친척 등이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명시가 돼 있지 않다보니 공개 대상을 부모와 자식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해외입양인연대 관계자는 “업무 담당자들이 법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시행령에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호하고 허술한 제도는 가족찾기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조차 혀를 내두른다. 입양특례법 시행령에서 ‘입양정보 공개를 15일 이내에 결정·통지해야 한다’고 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입양기관의 가족찾기 업무 담당자는 “정보공개 요청이 들어오면 친모와 연락을 취해 거부하면 설득하고 응하더라도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등 필요한 절차가 많다”며 “보통 1인당 100건씩을 진행하는데 15일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보공개 청구 기한이 일반적으로 15일이기 때문에 형평성을 맞춘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친가족의 소재를 파악하는 단서가 될 기록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자 입양인들이 직접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달 초 미국 국적의 한국계 혼혈입양인 모임 ‘325KAMRA’의 대표단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뿌리의 집’을 찾아 왔다. 자녀를 해외로 입양보낸 친가족의 유전자(DNA) 정보를 모아 미국에 살고 있는 입양인의 DNA와 비교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업은 미국의 한 입양인이 DNA 검사 키트 1만개를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325KAMRA는 매주 화·목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 뿌리의 집에서 DNA 검사를 진행한다.

이 모임에 따르면 9일까지 한 달여에 걸쳐 60여명이 검사를 받았다. 인적 정보를 기재하고 상담한 뒤 구강상피세포를 채취하는 데 약 30분이 걸린다. DNA 검사 결과가 나오면 미국 DB 자료와 비교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최종 결과는 6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다보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325KAMRA 관계자는 “미국과 한국에서 절반(5000개)씩 검사를 진행하는 게 목표인데 이런 진행 속도라면 10년이 걸릴 것”이라며 “관계 당국에서 적극 나서 입양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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