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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국립한국문학관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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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5-06 21:35:16 수정 : 2016-05-06 21: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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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 읽는 나라의 문학사랑
언제부터 이리 뜨거웠는지
20여개 지역에서 유치 경쟁
지역안배·정치논리 배제
대한민국 문학정신 살릴
‘최적지 찾기’ 중지 모아야
‘문학’이 이즈음처럼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를 위해 전국 20여개 지역이 저마다 자신들의 지역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유서 깊은 곳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구는 이 지역과 인연을 맺은 이상화 현진건 이육사를 내세우면서 100만인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강릉은 허균 허난설헌 김시습을 앞세우고, 원주는 박경리를, 춘천은 김유정을 내세워 자신들의 지역이야말로 국립문학관의 최적지임을 외치는 형국이다. 파주에서도 국내 최대 출판도시라는 점을 내세우고 전남 장흥에서도 많은 시인과 소설가의 문향임을 강조한다. 인천에서는 기왕에 존재하는 근대문학관을 최대의 강점으로 제시한다. 서울에서도 은평구는 많은 문인들과의 연고를 상기시키며 국립문학관을 유치해 ‘문학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국립문학관 우선협상대상자 후보지 공모 설명회에는 이래저래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열기를 띠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문학이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다는 방증 아니냐고 국외자들은 충분히 말할 수 있을 터이다. 과연 그러한가. 지하철을 타면 책을 들고 있는 이를 만나는 건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는 형국이다. 그나마 책을 읽는 이들 중에서 문학을 선호하는 이들은 드물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문학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한 건 손으로 꼽을 정도다. 더욱이 지난해 신경숙 표절파문이 촉발한 문학에 대한 절망은 한국문학을 초토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출신 도종환 의원이 문학진흥법을 발의해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 서둘러 통과시키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마지막 날 문학진흥법이 통과됐고 그 법에 명기된 국립한국문학관이 이제 부지를 찾고 설계를 거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준비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다음달까지 국립문학관 우선협상대상 후보지를 선택해 1곳을 고르고, 올 상반기에 기본계획 수립과 설계작업을 진행한 뒤 2018년 착공해 2020년 하반기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자 마자 숨고를 틈도 없이 진행되는 스케줄이다. 국립문학관을 만들자고 할 때는 정작 국립도서관을 활용해 자료를 보관하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공무원들이다. 이제 법안이 통과되니 번갯불에 콩 튀겨 먹는 속도로 진행되는 분위기가 아찔할 따름이다.

국립문학관을 설립하자는 취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료를 집대성해 한곳에 체계적으로 보관하되 이를 활용해 문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진흥하자는 것이다. 자료를 모아 조선시대 사고처럼 외진 곳에 무덤처럼 보관하자는 맥락이 아닌 것이다. 국립문학관이 설립되면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할 것이고, 따로 다양한 낭독회와 전시를 기획해 대중이 수시로 찾아와 문학의 향취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마땅히 기능해야 할 터이다. 이런 판국에 형식적인 기준을 내세워 기계적인 평점을 매겨 특정 지역에 국립문학관을 배치하는 행태는 크나큰 과오일 수 있다.

‘문학’에도 인격을 부여하자면 지금 가장 절실한 기준은 어찌하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관이란 그 나라의 정신과 문화가 집약된 예술관인데 지역 안배나 정치적 힘의 논리로 논의할 테마가 아니라는 점은 자명하다. 작금 한국에서 소외돼 가는 문학이라는 친구가 유폐에서 벗어나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찾아야 할 터이고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얼마나 빛나는 소출을 거두어왔는지 제대로 접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개별문학관 80여개에 사립과 지자체 관할 문학관을 모두 합치면 100여개에 이를 정도 문학관은 차고 넘친다. 이들을 총괄하고 문학의 위의를 보여줄 중심을 어디에 세울 것인지 심사숙고할 일이다.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세웠다가 다시 서울에 분관을 지은 일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징성과 더불어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자료들을 보관할 확장성도 고려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대한 많은 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성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터이다. 반짝 사랑에 그치지 않고 문학을 오래 외롭지 않게 하려면 그이의 집을 어디에 지어야 할지, 모든 대한민국 거주민들이 허심탄회하게 중지를 모아야 할 긴박한 시점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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