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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미국의 학자, 한국의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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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25 19:34:00 수정 : 2016-04-25 19: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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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지적·정신적 독립 일깨운 에머슨
우린 ‘글로벌 척도는 미국’ 착각 속에 빠져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월든 호숫가를 제공해 준 이는 랠프 왈도 에머슨이었다. 소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에머슨은 비범한 청년임을 감지했고, 그에게 이끌렸고, 그를 후원했으며, 그가 타계할 때까지 깊은 우정을 나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신 같은 존재로 여기며 더불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갔다. 에머슨은 미국적 영혼의 독립을 자연으로부터 찾고자 했던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시인이다.

널리 알려진 에세이 ‘자연’(1836)에서 에머슨은 자연의 미는 정신의 미이고, 자연의 법칙은 그 정신의 법칙임을 강조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고, 자연적 사실의 기호인 언어를 넓고 깊게 해준다. 아울러 인간의 오성과 이성을 훈련시켜 진리를 탐문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기에 인간이 자연에 대해 무지하면, 그만큼 자신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자연’이 출간된 다음 해인 1837년 하버드대서 행한 ‘미국의 학자’라는 연설에서 에머슨은 소크라테스 시절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와 오늘날의 격언 “자연을 공부하라”는 결국 동일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직접 들었던 올리버 웬델 홈스가 훗날 이 연설을 두고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서이다”라고 술회했을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한 상태였지만 천혜의 자연에 걸맞은 정신의 독립을 한 상태는 못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신의 새로운 좌표를 성찰하기 위해 에머슨은 자아와 자연과 정신 사이의 회통을 강조한다. 살아 움직이는 심령의 가치를 중시한다. 누구나 그것을 지닐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은 그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심령을 제대로 보지 못할뿐더러 그것을 드러내는 데 서툴다. 그런데 생기 있는 심령이 절대적 진리를 보고 진리를 말하고 혹은 창조하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들은 그 심령을 보고 드러내고 창조한다. 그들은 이전의 결론이나 생각에서 멈추려 하지 않는다. 기존의 것에 자신을 고정시키려 하지 않는다. 앞을 바라본다. 그런 사람들이 미래를 전망하고 창조의 지평을 열 수 있다. 창조적인 태도나 행동, 말들은 이전의 관습이나 권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정신 그 자체의 감각에서 자발적으로 솟아나온다”고 에머슨은 역설한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학자들이 여전히 유럽 과거의 전통과 권위에 기대어 살아 있는 심령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음을 에머슨은 안타까워한다. 그는 “자신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대중의 아우성에 결코 굴하지 않는 태도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이야 말로 학자들의 기본자세일 텐데 미국의 학자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에머슨이 이 연설을 한 지 18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한국의 학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른바 글로벌 척도를 내세워 미국식 학문 제도에 너무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학위에서 논문 평가 제도에 이르기까지 미국 기준에 너무 순응적인 게 아닌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나 한국의 정신이나 학술적 성찰을 폄훼하는 것이 아닌지 등 생각거리가 많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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