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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엄마지만… 아이 위해 새로운 삶 꿈꿉니다"

입력 : 2016-04-22 19:17:51 수정 : 2016-04-23 09: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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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수감자 중 5%가 여성… 사회적 관심 필요

“그건 희생이 아니라 순전히 제 욕심이었어요. ‘돈 많이 벌면 우리 애도 행복해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5년 전 사기죄로 8개월간 수감됐던 나엄마(49·여)씨는 범행 당시만 해도 자신의 행동을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차갑고 낯선 교도소에 갇힌 지 얼마 안 돼 자기가 틀렸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딸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이 강하게 몰려 왔다. 그래서 ‘하나뿐인 딸에게 결코 수감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지 말라”는 주위 권유에도 갓 중학생이 된 딸을 만나지 않았고, 자신의 처지도 안 알렸다. 딸은 친구들이 “너는 엄마가 어디 있니”라고 물으면 “외국에 나가 계신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나씨는 “딸은 엄마가 재판을 받으러 가서 못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굳이 실상을 알려 깊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여성 수감자는 전체 수감자(3만2137명, 2013년 기준)의 5%(1612명) 수준이다. 여성 수감자 10명 중 5명(49.1%)가량은 사기·횡령죄를 저질렀다. 여성 범죄자의 상당수가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범죄에 손을 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전체 수감자의 사기·횡령죄 비중이 15.6%인 것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치다. 

나씨는 수감복을 처음 입을 때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력감을 잊을 수 없다. 그를 버티게 한 건 오직 딸의 존재였다. “저는 아이 때문에 살았지, 아니면 나쁜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우리 애가 자라서도 제가 건강하게 있어야 힘이 될 수 있지 않겠어요?” 하지만 엄마가 비운 자리는 컸다. 나씨가 출소한 뒤 만난 딸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탓인지 체중이 10㎏ 이상 늘었고, 담임 교사는 걱정 섞인 목소리로 “뒤에서 4등”이라는 시험 결과를 전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딸이었다.

나씨는 자신의 삶을 가로지른 ‘빨간 줄’이 딸의 발목까지 붙잡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한창 엄마의 손이 필요한 나이인데 부모로서 도리를 못했어요. 항상 걔를 보면 제 말문이 막혀요. 저 때문에 딸이 힘든데….”

나씨처럼 자녀를 돌봐야 하는 여성 재소자들은 출소 이후 사회 적응 과정에서 자녀와의 관계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남성과 달리 여성 출소자의 50% 가까이가 30, 40대로 대부분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라며 “민감한 시기의 자녀에게는 엄마의 부재가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한다. 심하면 ‘범죄의 대물림’ 현상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여성 출소자에 대한 취업 알선과 주거, 심리상담, 자녀 학업 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원 건수는 2013년 3356건, 2014년 3601건, 2015년 3952건으로 차츰 늘고 있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받은 수혜자는 절반(50.7%, 2013년 기준)밖에 안 될 만큼 지원 여력이 부족하다. 공단 관계자는 “예산과 인력이 넉넉지 않아 출소자 지원에 한계가 있다”며 “재소·출소자 규모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관련 예산이 한국의 10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성균관대 이동훈 교수(교육학)는 “여성 출소자 대부분은 남성 출소자와 달리 가정이 깨져 정상적인 자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며 “가정의 해체는 또 다른 범죄를 잉태할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만큼 수감 중이거나 출소한 여성, 그리고 그 가족 관계 보존에 사회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여성 출소자 10명의 심층면접 결과를 담은 논문 ‘수감생활 및 출소 후 과정에서 여성출소자의 삶과 가족관계 경험’(2016년 3월 한국심리학회지) 등을 참고해 가상인물 ‘나엄마’씨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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