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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1000배 이상 위력’ 수소폭탄의 개발 역사

입력 : 2016-04-16 02:00:00 수정 : 2016-04-18 09: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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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종전 후 미·소 군부 강경파
한 나라 초토화 시키는 폭격 계획 수립
설계도 놓고 벌이는 스파이 대결 ‘불꽃’
두 강대국 개발 경쟁으로 재정 파탄
저자 ‘어리석음 비축’ 왜 생겼는지 물어
1954년 핵전쟁 부추긴 이승만도 언급
리처드 로즈 지음/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5만원
수소폭탄 만들기-20세기를 지배한 어둠의 태양/ 리처드 로즈 지음/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5만원

전후 50년 가까이 세계를 지배한 단 한 개의 물건을 꼽으라면 그것은 수소폭탄이었다. 수소폭탄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파괴적인 무기다. 원폭의 1000배 이상 파괴력을 보인다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인류는 무엇하려고 만들었을까. 이 책은 이 폭탄의 개발과 군비경쟁을 벌인 현대 정치사를 리얼하게 묘사한다. 미국 유력 저널리스트 리처드 로즈(Richard Rhodes)는 1996년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비밀 외교문서를 그대로 인용, 수소폭탄을 둘러싼 미소 초강대국 경쟁사를 마치 서스펜스 소설처럼 풀어간다. 

1953년 무렵 미국의 한 섬에서 실시한 수소폭탄 마이크의 폭발실험 장면을 찍은 항공사진. 폭발구덩이가 깊이 69.96m, 지름이 1.6km로 관측됐고, 이 섬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미국은 수소폭탄 개발을 1942년경 착수한다. 소련은 1946년 무렵이었다. 원폭의 개발시기와 겹친다. 삼중수소와 우라늄 플루토늄을 연쇄폭발시키는 수소폭탄은 플루토늄이나 우라늄으로 제조되는 원폭과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파괴력을 보인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은 원폭 실험과정에서 발견한다. 당시 세계대전 전후의 어수선한 상황이라 누구도 수폭의 파괴력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2차대전 이후 미·소 대결은 이미 예견됐다. 두 나라 군부 강경파, 매파 정치가들은 또다른 전쟁 계획을 수립한다. 한 나라를 초토화하는 전략 폭격 계획을 수립한다. 과학자들도 덩달아 흥분한다. 새로운 과학원리를 발견하겠다는 바람으로, 또는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으로, 쓰지도 못할 물건을 만드는 데 국력을 소진했다.

1945년 7월 말 포츠담서 전후 처리를 위해 만난 처칠, 트루먼, 스탈린. 이 자리에서 트루먼은 파괴력이 엄청난 신무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스탈린은 이미 첩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주)사이언스북스 제공
수소폭탄 제조 설계도를 둘러싸고 지키려는 자와 뺏는 자의 대결은 불꽃 튀었다.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 중엔 소련이 심어놓은 스파이도 끼여 있었다. 스파이들은 미국의 수폭 제조 계획을 소련 수뇌부에 알리게 된다. 깜짝 놀란 소련 수뇌부는 즉시 설계도 입수를 비밀 지시한다. 가공할 무기 경쟁의 시작이다.

책에선 핵전쟁을 부추긴 이승만 관련 언급도 나온다. 1954년 7월 이승만은 워싱턴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방문했다. 이승만은 이 자리에서 느닷없이 “한반도를 통일하고 싶으니 무슨 식으로든 개입하라”고 요구했다. 이대로 가만놔두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이 공산화될 것이니 미국은 새로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며 전쟁을 부추긴다. 한반도에서 수백만명이 죽은 지 불과 1년만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수소폭탄 사용을 부추기는 군부 강경파들을 제지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승만의 어이없는 제의에 아이젠하워는 “핵전쟁이 일어나면 문명이 파괴되고, 수백만명이 죽어요. 그런 무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은 감히 엄두도 못낸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무한 경쟁은 미소 두 나라 재정을 거덜냈다. 미국은 4조달러 이상을 날렸고, 소련은 경제 위기에 몰려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4조달러는 1994년도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규모였다. 소련이 쓴 비용도 만만찮았다. 이 때문에 미국 보수 정치인들은 냉전을 옹호하기도 한다. 돈을 왕창 쓰기는 했지만 소련을 파산시켰으니 군비경쟁은 정당하지 않았느냐는 것.

하지만 미국내 매파들은 과도한 군비경쟁 때문에 미국도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는 사실엔 눈감아버렸다. 도처에서 몰락의 징후는 드러난다. 국가 부채가 재정 운용을 압박하고 있다. 기반시설 구축이 쇠퇴했으며 사회 및 교육 투자가 부실했다. 두 강대국은 제살 깎아먹기 경쟁, 전멸 전쟁이라는 터무니없는 ‘가상 위험’을 감수했다.

저자는 왜 이런 ‘어리석음의 비축’과 ‘공포의 균형’이 기원하게 되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책에선 현대 물리학의 대스타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핵물리학자인 이고리 쿠르차코프,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일화도 소개된다. 아울러 오늘날의 한반도를 만들어낸 해리 트루먼과 스탈린, 르메이와 베리야, 흐루쇼프, 이승만까지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되묻는다.

저자는 “1938년 핵에너지를 방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었다. 낡은 전쟁 규칙은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다. 핵으로 인해 오늘날 내전과 재래식 국지전을 제외한 세계 차원 전쟁은 사라졌다”면서 “그러나 인류는 이 가공할 공멸의 무기를 언제쯤 폐기할지는 누구도 모른다”고 자탄한다. 이 책은 1160여쪽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소설처럼 술술 읽힌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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