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출간을 계기로 한국에 온 존 차를 그의 영문을 번역한 소설가 문형렬과 함께 광화문에서 만났다. 존 차의 목소리는 느리지만 정감이 있었고 희미하게 자주 웃었다. 오랜 세월 고통으로 단련된 이만이 내보일 수 있는 헛헛한 웃음이었다. 문형렬은 “뾰족하고 날 선 얼굴들이 많은 이즈음 오래전 사라진 한국인의 넉넉한 얼굴을 존에게서 본다”고 옆에서 말했다.
세계적인 예술가인 여동생 테레사 차의 죽음을 붙들고 30여년 동안 씨름해오다 그 전말을 소설로 펴낸 재미 작가 존 차. 그는 “동생이 죽어가면서 남긴 장갑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추상적인 작품이었다”면서 “그 마지막 이미지야말로 이 소설을 끌고 온 힘이었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
“재판이 끝난 뒤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을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6번이나 써놓은 걸 갈아엎었지요. 증오와 분노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어느 정도 객관화되고 저 자신의 평화를 위해 그만 잊고 용서해야 한다는 충고도 들었지만 여전히 용서하긴 힘들어요. 동생의 죽음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존 차는 1945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이듬해 남쪽으로 내려온 뒤 경기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1961년 도미했다. 4·19 국면에서 ‘광기’에 휩싸여 시위 대열을 쫓아다니던 아들의 안위를 염려한 아버지의 ‘추방’이었다. 먼 친척 할머니가 사는 하와이로 홀로 갔다가 이듬해 가족이 모두 건너와 합류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해양시설 엔지니어로 세계를 누비면서 살았다. 테레사 차는 버클리대학에서 미술과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서 영상이론도 공부했다. 오빠와 동생은 떨어져 지내면서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존 차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해 작가의 길을 꿈꾸었지만 미국 땅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어서 엔지니어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오빠는 동생의 죽음을 기록하면서 생의 반환점을 돌아서야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존 차가 1990년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영어로 번역해 당시 문예진흥원에서 주는 한국문학번역대상을 받은 건 어머니의 권유 덕이었다. 남매의 모친 허형순 여사는 용정에서 자라면서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순이’의 모델이었을 만큼 아름다운 문학소녀였다. 그 모친의 강력한 자장이 장남은 물론 죽은 여동생에게도 강력하게 미쳤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후 존 차는 다시 도산 안창호의 딸 안수산 여사의 전기 ‘버드나무 그늘 아래’를 출간했고 황장엽 북한 노동당 전 비서 일대기를 집필하기도 했다. 안수산 전기는 소설가 문형렬 번역으로 2003년 국내에도 선보였다. 이보다 앞서 1990년대 중반에는 문씨의 장편 ‘바다로 가는 자전거’를 존 차가 영어로 번역해 코리아타임스 번역상도 수상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서로 번역해주는 사이로 존 차와 20여 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소설가 문형렬은 “존 차의 영어 문장에서는 휘파람 소리가 난다”면서 “아름다운 리듬감이 살아있다”고 평했다.
“동생의 작품들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커다란 울림이 있어요. 문장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데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무의식이나 정서가 울게 만들어요. 샤만적인 울림이 있어요. 동생의 영어 문장은 워낙 특이하고 탁월해서 어떤 이들은 새로운 영어를 발명했다고 말하기까지 해요. 학경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추방, 망명, 유배의 의미를 담은 에그자일(exile)이었어요.”
‘안녕, 테레사’의 영문 저자 존 차와 한국어로 번역한 소설가 문형렬(오른쪽). |
“내 안에서 동생은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어요. 몇 년 전 동생을 아끼는 이들이 살아 있으면 환갑일 동생의 생일을 기념한다고 연락을 하던데 내 안에서는 영원히 서른한 살일 뿐이지요. 동생이 마련해준 문학의 길을 계속 갈 겁니다. 어머니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만주 용정의 삶을 구체적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와 미국까지 이어지는 디아스포라의 총체적인 면모를 다시 소설로 시작해볼까 싶어요.”
슬픔이 오래 씻겼을 때 나올 법한 낮고 잔잔한 목소리로 오빠는 내내 말을 이었다. 죽은 동생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흘러가는 ‘안녕, 테레사’는 이렇게 끝난다. ‘네가 생의 저쪽으로 간 이유는 이승에서 네가 할 일을 완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일을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 있다. … 때로는 내 꿈에 찾아와 차를 마시고, 너의 황금 숨결을 가진 황금 사슴과 깃털 펜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려무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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