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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돌아온 노작가… ‘삶의 축제’ 완성하다

입력 : 2016-04-15 00:37:47 수정 : 2016-04-15 01: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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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작가 윤후명, 12권 소설전집의 첫 권 ‘강릉’ 발간 소설가 윤후명(70)의 50년 가까운 문학 결실을 아우르는 전집이 시동을 걸었다. 12권으로 예정된 소설 전집 첫 권은 ‘강릉’(은행나무)이다. 첫 권에는 근년에 발표한 신작 9편과 데뷔작 1편을 묶었다.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에 이어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인 ‘산역’을 신작들 사이에 끼운 연유는 ‘시작’의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표제로 삼은 ‘강릉’이라는 단어 역시 통상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제목들 중에서 뽑는 관례를 벗어나 윤후명 문학을 관통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끌어왔다. 윤후명이 작가의 말에 분명하게 언급한 그 맥락은 이러하다.

“‘강릉’은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에 놓이는 어떤 것이다. ‘어떤 것’이란 그것이 동해안의 지명에서 비롯하였으나 단순한 지명에 머물기보다는 나라는 인간 존재와 철학까지를 일컫는다는 믿음을 포함하는 말이다. 꾸준히 말해왔던 바 비록 소설가가 여러 소설을 쓸지라도 결국 ‘하나의’ 소설일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그 영토를 마련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 소설집에 다른 하나의 제목을 단다면 ‘강릉 호랑이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음을 덧붙인다.”

윤후명에게 ‘강릉’은 8살 때 떠나 62년 만에 회귀한 고향이다. 지난해 강릉 ‘문화도서관’의 명예관장이라는 위촉패를 얻어 먼 우회로를 돌아온 셈이다. 그는 이제 이곳에서 여생의 문학을 정리할 참이라고 한다. 그에게 강릉은 단순한 지역의 의미를 떠나 북방정서의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강릉단오제’의 핵심에는 호랑이 설화가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가 내려와 처녀를 잡아다가 같이 살았다는 것인데 예전 강릉 지역의 호환(虎患)을 백성들이 스스로 위무하기 위한 창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잡혀간 처녀의 머리가 바위에 걸쳐져 있지만 저녁이면 머리를 감는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니,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 호랑이와 합쳐지는 희망의 설화였던 셈이다. 이번 소설집 말미의 수록작인 ‘호랑이는 살아 있다’에서 윤후명이 이렇게 기술한 배경이다.

“‘메콩 강’을 뒤돌아선 나는 단오기념관을 거쳐 다시 둑길을 걸어갔다. 호랑이가 내 옆을 따르고 있었다. 나와 호랑이는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냇물은 흐르고 어릴 적 내가 방공호에서 기어나와 둑길을 걷고 있었다. 호랑이의 발걸음은 무겁고도 날렵했다. 어릴 적 나와 이제 나이 먹은 나는 하나가 되고 호랑이도 하나가 되어 있었다. 내 품에는 언젠가처럼 처녀의 머리도 안겨 있었다.”

60년 만에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소설가 윤후명. 그는 “고향의 자연 속에서 내 마지막 글을 쓸 꿈을 꾼다”면서 “글이란 삶의 보은(報恩)임을 깨달아 고향에도 보은하겠다는 뜻”이라고 소설에 썼다.
서상배 선임기자
남대천에서 ‘메콩 강’을 떠올리는 것은 ‘강릉’을 한반도 동쪽의 작은 지명으로 가두어두지 않으려는 윤후명의 작의가 선명하게 반영된 까닭이다. ‘알타이 족장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강릉을 찾아온 알타이족 음유시인을 등장시켜 ‘아름답다’는 말을 나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후명은 이러한 북방정서를 근간으로 호랑이 설화 속에 자신을 이입시켜 노년의 문학을 완성할 작정이다. 일찍이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소설을 주업으로 살아온 그는 “시라도 좋고 소설이라도 좋고, 이제는 시와 소설의 구별 없이 함께 쓰는 어떤 글이 내 장르이며 나를 내 방법으로 증명해야 한다”면서 “그것이 문학”이라고 토로한다. 이러한 태도는 이번 소설집에 그대로 반영되어 소설에 시가 수시로 삽입되고 이야기는 사소한 단초를 빌미로 자유롭게 이리저리 흘러다닌다.

고향을 떠나 막막한 서해를 지나 페르귄트처럼 방황하다가 노경에 돌아온 그이지만 그가 떠돈 세월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고향의 ‘호랑이’가 되어 죽은 것들을 다시 살려내는 작업, 그 축제를 완성하고 싶은 것이다. 호랑이와 함께 “어머니, 사라진 친구, 패.경.옥이라는 이름의 소녀들, 연변 계순아줌마, 전쟁 때 이웃집 소꿉놀이 소녀,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 세월호 아이들까지” 남대천 물길을 바라보며 삶의 축제를 향해 걸어가는 한 장면이야말로 지금까지 써 온 단 한 편의 대미를 이룰 장관의 시작일 터이다.

‘강릉’에 이어 ‘둔황의 사랑’ ‘협궤열차’ ‘한국어의 시간’ ‘섬’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가장 멀리 있는 나’ ‘유니콘을 만나다’ ‘바오밥나무의 학교’ ‘무지개 나라의 길’ ‘약속 없는 세대’ ‘삼국유사 읽는 호텔’이 내년까지 완간될 소설 전집의 목록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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