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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제작자로서 내 삶은 한마디로 ‘미친 짓 연대기’”

입력 : 2016-04-10 21:11:33 수정 : 2016-04-10 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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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럴 줄 알았다’ 펴낸 신시컴퍼니 박명성 감독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 꿈을 꾸는 사람.’

신시컴퍼니 박명성(53) 예술감독은 프로듀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20년 넘게 ‘맘마미아’ ‘시카고’ ‘렌트’ 등 숱한 연극·뮤지컬을 올리며 얻은 결론이다. ‘꿈’이라니 다소 낭만적으로 보인다. 프로듀서는 기획, 투자, 홍보까지 공연 전반을 책임진다. 작품 한 편에 많게는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만진다. 이해득실에 밝아야 할 텐데 오히려 그는 후배들에게 “장사꾼이 아니라 예술가가 되라”고 당부한다. 그가 프로듀서로서 전하고 싶은 철학을 책으로 묶었다. 제목은 ‘이럴 줄 알았다’다. 7일 서울 강남구 신시컴퍼니 사옥에서 만난 그는 “하도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 이제 이력이 나다보니 망해도 ‘이럴 줄 모르고 했나’ 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프로듀서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대를 향한 꿈을 꾸고, 이 꿈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가져라입니다. 그래야 추진할 동력이 생기고 주저 없이 시작하게 돼요. 작품의 흥망은 다음 얘기고요.”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신문 보고 원고 쓰고 운동을 한다”며 “작품을 만들면서 느낀 점, 30년 넘게 해오면서 가지게 된 정서나 비전을 글로 정리했는데 관심을 가져주는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꿈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역시 계산기부터 두드리지 않아서다. 그는 제작자로 걸어온 길을 ‘미친 짓 연대기’라 부른다. 공연이 망해 신혼 전세금을 빼 빚잔치했어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프로듀서의 존재 이유는 ‘남과 다른 나만의 꿈’에 있다고 믿어서다. 일단 꿈을 꾸라니, 가진 것 없는 젊은이에게는 공허한 조언으로 여겨질 법하다. 하지만 그 역시 무일푼으로 시작했다.

1980년대 그는 극단 사무실에서 장정 대여섯 명과 뒤엉켜 살았다. 공동화장실에서 빨래하고 찌그러진 냄비에 라면을 끓였다. 처음 월세 원룸을 얻은 건 34살이나 돼서였다. 30년이 지난 현재 그가 이끌어온 신시컴퍼니는 국내 3대 뮤지컬 제작사로 자리 잡았다. 해봤기에 그는 “두려워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말한다.

“문화콘텐츠 분야가 가장 창업하기 좋고 가장 빨리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요. 한두 명으로도 가능해요. 훌륭한 아이디어, 감동적인 시놉시스만 있으면 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내 콘텐츠에 확신을 갖는 게 중요해요.”

그가 가장 최근 저지른 ‘미친 짓’은 창작 뮤지컬 ‘아리랑’이다. 조정래 대하소설이라는 무거운 원작을 46억원을 들여 뮤지컬로 만들었다. 2007년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로 25억여원의 빚을 지고도 또 창작에 도전했다. 일단 지난해 초연은 성공적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노래에서 보완할 점이 있어요. 군중 장면에서 감동적인 대합창이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감성을 건드리는 면이 부족했어요. 좋은 아리아인데 너무 짧은 경우도 있었고요. 드라마도 말을 조금 줄이고 노래나 합창으로 보완하고 싶어요. 어떤 작품이든 막이 오르면 부족한 부분이 발견돼요. 더군다나 초연인데요.”

자존심상, 자식 같은 작품의 단점을 말하기 꺼리라 예상했으나 그의 반응은 반대였다. 그는 “사람 정서는 똑같아서 제작자에게도 부족한 건 다 보인다”며 “‘내 걸 누가 손대’ ‘내가 하는 걸 감히 누가’ 이러는 창작자는 본 적 없고 다들 납득되고 공감 가면 기꺼이 수정한다”고 말했다. ‘아리랑’도 수정·보완을 거쳐 내년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의 다음 목표는 화가 이중섭이다. 마라톤하듯 긴 호흡으로 준비하려 한다.

“이중섭이 죽기 전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있어요. 이 편지를 마지막 노래로 만들면 감동과 전율이 오지 않을까. 그 꿈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중섭을 소재로 한 뮤지컬은 현재 장우재 작가가 일차 대본을 쓰고 있다. 연출은 고선웅이 할 예정이다. 그는 “고선웅이 있어서 ‘아리랑’을 이 정도 만들었다”며 “무대를 잘 알기에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고 초연을 무난히 할 수 있었다”고 신뢰를 보냈다. “장우재 작가 역시 이중섭의 짧은 생애를 깊이 있게 다룰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꿈은 ‘아리랑’에서 이중섭, 그리고 더 너머로 길게 뻗어나간다. 젊은 시절의 열정이 바닥났을 법하지만 그는 여전히 “맨날 꿈을 꾼다”고 한다. 그는 “사람도 새 인연을 만나면 설레듯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꿈을 꾸면 흥분된다”며 “가슴 속에서 새로운 일을 자꾸 만들어내니 부지런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맨날 ‘맘마미아’만 반복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연극·뮤지컬이 엄청난 돈을 벌려고 하는 일도 아니고요. 회사 운영하고 직원들이 행복하게 작품 만들면 되는 거죠. 새로운 일을 하면 정신이 상기되고 새로워지는 마력이 있어요. 그간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체득했습니다. 이제는 좀 완숙하고 안정되게 작업할 나이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중견 프로듀서 소리를 듣나봐요. 딱 중간을 넘어선 거죠. 조금 더 느긋하고 차분하게, 조금은 능수능란하게 제작과정을 요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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