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아픈 땅 고쳐 좋은 땅으로”… 도선 풍수는 ‘치유의 지리학’

입력 : 2016-04-08 20:38:36 수정 : 2016-04-08 20:39:5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려 도읍 개성은 명당이 작아 동물석상 세워 안정 도모
도선 풍수 핵심은 모자란 것 도와서 채우는 ‘비보’
‘한국 풍수의 시조’ 도선 풍수의 발자취 담아
최창조 지음/민음사/3만5000원
한국 자생 풍수의 기원, 도선/최창조 지음/민음사/3만5000원


‘풍수무전미’(風水無全美), 즉 완전한 땅이란 없다. 한국 풍수란 지맥이 끊기고 산맥이 끊겨 운이 다한 땅을 보살핀다. 결함을 취하여 그를 고치고자 함이 도선(827∼898) 풍수의 근본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고침의 지리학, 치유의 지리학’이 도선 풍수 사상이다. 저자 최창조 교수는 새봄이 오면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지맥을 점검한다. 이를 토대 삼아 도선을 연구한 결과물이 이 책으로 엮였다. 사실 도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었다. 그의 입적 후 고려시대 나온 도선 관련 기록들은 지배계급인 왕씨 가문의 정당성 확립에만 집중되었다. 따라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현대 학자들의 해석과 평가도 상반돼 도선이 도대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도선을 한국 풍수의 ‘비조’로 단언한다. 도선에서 시작된 한국 풍수의 맥은 이후 묘청, 신돈, 무학, 이의신, 홍경래, 전봉준으로 이어진다.

풍수란 좋은 땅을 골라 음덕(蔭德) 좀 보자는 술법 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이는 중국에서 전래된 풍수 개념 때문이다. 그러나 도선 풍수, 즉 한국적 자생 풍수는 땅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사람과 자연의 상생 조화이다. 도선 풍수는 ‘비보’(裨補)가 핵심이다. 비보란 모자라는 것을 도와서 채운다는 의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적극적 개입을 의미한다. 즉 좋은 땅을 찾는 풍수가 아니라 ‘아픈 땅을 고쳐 좋은 땅으로 만드는’ 개념이다.

도선의 초상
예컨대 고려 도읍지 개성은 도선의 제자들에 의해, 서울은 무학에 의해 결정되었다. 개성은 분지 지형으로 명당 규모가 작았다. 주산인 송악산이 달아나는 형상이어서 오수부동격을 적용해 지맥을 이었다. 쥐, 고양이, 개, 호랑이, 코끼리 등 다섯 짐승의 석상을 세워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서울은 주산인 북악산이 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고, 인왕산과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정궁인 경복궁을 중앙이 아니라 서쪽 가까이에 배치했다. 실제 경복궁은 북악산 서쪽으로 치우쳐 있다. 둘 다 모두 명백한 비보책이다. 

서울 시내 중심부 모습이다. 도선의 풍수를 이어받은 무학은 북악산과 인왕산이 서로 맞지 않아 경복궁의 자리를 서쪽으로 이동시켰다.

민음사 제공
왕건은 도선을 끌어들여 개성 천도의 이유와 왕조의 정통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처럼 불완전한 풍수적 조건을 비보로 보완했다. 도선은 당대 천재 최치원과 동시대의 인물이었지만 학벌이나 경력, 가문 등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미했다. 특히 도선의 창업 당시 공로에도 불구하고 고려 시대 지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도선의 언급은 한 줄도 없다. 아마도 비주류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도선은 당에 유학하지 못한 평범한 승려였으나 국사에 올랐다. 지리산의 이인으로부터 풍수를 배웠다. 그는 철저히 비보를 주장한다. 그의 풍수는 국토에 바탕을 두었고, 중국의 난해한 풍수에 비해 쉽고 상식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지리를 다루면서도 인간을 고려했다. 도선은 유학파가 아니면서도 면면히 한국 풍수의 비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