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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구호에 개인 고통은 망각… ‘트라우마의 이중성’

입력 : 2016-04-08 20:13:47 수정 : 2016-04-08 2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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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파생, 리샤르 레스만 지음/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트라우마의 제국-트라우마는 어떻게 우리 시대 고통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나/디디에 파생, 리샤르 레스만 지음/최보문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정확히 2년 전 세월호가 바다에 가라앉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무능력한 해경과 우왕좌왕하는 정부, 자기만 살겠다고 뛰쳐나온 선원들, 배 속에 갖힌 여린 생명들…. 그 트라우마는 아직도 우리를 짓누른다.

이후부터 피해자들의 고통은 ‘트라우마’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 피해자 개개인의 이야기는 사라졌다. 정치적 이념이 덧씌워지면서 처음의 애도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은 전개된다. 피해자 개개인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정치 구호만 남는다. 어린 싹들을 위한 새 질서와 안전한 ‘우리나라’의 재건을 기대하던 국민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사태와 흡사했다. 참사 직후 미국 정부는 테러범을 추적했다. 정부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의료적, 물질적, 법적 혜택을 제공했다. 국가는 ‘트라우마’라는 말로 피해자들의 정신 상태를 규정하고, 치유자로 자처했다. 피해자는 규격화된 ‘치료받을 환자’가 되었고, 가족과 관련자들 역시 보편적이고 단일한 ‘병적 정신 상태’로 규정되었다. 미국은 한동안 ‘트라우마의 나라’가 된 듯했다. 테러를 가한 악마들과 피해를 본 선한 시민이라는 구도로 사건은 재편되었고, 세상은 전쟁으로 나아갔다.

비슷한 두 사건을 볼 때 트라우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선과 악의 구도를 세운다. 이때 개인의 개별성은 트라우마에 가려진다. 트라우마는 개인과 집단 사이를 구별한다. 개인에게는 통제를 가하며, 집단에게는 응집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트라우마 개념은 새로운 분열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심지어 거의 보이지 않게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다. 저자들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인증해주는지 드러낸다. 동시에 우리 시대의 중요한 도덕적,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피해자가 소외된 지금의 트라우마의 정치성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새로운 정치화를 위한 단초를 마련한다.

저명한 프랑스 인류학자이자 의사인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과 리샤르 레스만(Richard Rechtman)은 다양한 예시를 통해 트라우마 개념을 두 가지로 살핀다. 하나는 정신분석·정신의학에서 트라우마를 추적한 지식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를 이해하는 사회적 계보이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피해자의 고통을 입증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는가. 피해자는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가. 저자는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트라우마를 분석한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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