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라는 이름의 사내가 있다. 생에 오기를 부리는 속물이라는 의미로 편혜영(44·사진)은 새 장편 ‘홀’(문학과지성사)에서 장난스레 명명한 걸까. 지도학을 전공한 교수로 살던 ‘오기’ 본인은 그리 오기를 부리지 않은 삶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아침에 생의 깊고 검은 크레바스로 굴러떨어져 망가지는 캐릭터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는 죽고 자신은 눈만 겨우 깜박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인생을 실제 모습대로 보여줄 지도는 없다. 한마디로 정확히 예측가능한 삶이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축도를 거증하기 위한 서사가 ‘홀’의 전개과정이다.
교통사고가 아니었어도 오기의 추락은 본인이 쌓아올린 속물적 행태의 결과라는 아내의 ‘고발장’을 작가는 들이민다. 생의 정확한 지도는 없을 것이라는 전언에 동의하지만, 어두운 크레바스 못지않게 밝은 경사면도 혼재한 길을 두고 한쪽만을 과장한다는 불만도 있을 법하다. 어둠만이 빛의 조력자이기 때문인가. 편혜영표 소설은 이번에도 안온한 일상에 ‘홀’을 만들어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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