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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불가능한 삶의 ‘불편한 진실’

입력 : 2016-03-31 20:15:47 수정 : 2016-03-31 20: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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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장편소설 ‘홀’
“어떻게 삶은 한순간에 뒤바뀔까. 완전히 무너지고 사라져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릴까. 그럴 작정을 하고 있던 인생을 오기는 남몰래 돕고 있었던 걸까.”

‘오기’라는 이름의 사내가 있다. 생에 오기를 부리는 속물이라는 의미로 편혜영(44·사진)은 새 장편 ‘홀’(문학과지성사)에서 장난스레 명명한 걸까. 지도학을 전공한 교수로 살던 ‘오기’ 본인은 그리 오기를 부리지 않은 삶이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아침에 생의 깊고 검은 크레바스로 굴러떨어져 망가지는 캐릭터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는 죽고 자신은 눈만 겨우 깜박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오기의 엄마는 10살 때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이 사실 때문에 학교에서는 따돌림까지 당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지지하기보다 비꼬는 인물이다. 꼬일 수밖에 없는 서늘한 성장환경이다. 편혜영은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시침을 떼고 오기의 불우한 종말을 향해 이야기를 몰아간다. 오기가 강연에서 인용한 미국 지리학자 월도 토블러의 ‘지리학의 제1법칙은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지만, 가까운 것은 먼 것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실마리다. 오기는 이 강연 말미에 냉소적으로 단언했다. “지도는 세계를 실제 모습대로 보여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확한 세계지도는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인생을 실제 모습대로 보여줄 지도는 없다. 한마디로 정확히 예측가능한 삶이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축도를 거증하기 위한 서사가 ‘홀’의 전개과정이다.

교통사고가 아니었어도 오기의 추락은 본인이 쌓아올린 속물적 행태의 결과라는 아내의 ‘고발장’을 작가는 들이민다. 생의 정확한 지도는 없을 것이라는 전언에 동의하지만, 어두운 크레바스 못지않게 밝은 경사면도 혼재한 길을 두고 한쪽만을 과장한다는 불만도 있을 법하다. 어둠만이 빛의 조력자이기 때문인가. 편혜영표 소설은 이번에도 안온한 일상에 ‘홀’을 만들어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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