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티베트의 고난과 저항, 애달픈 사랑 여정

입력 : 2016-03-31 20:15:50 수정 : 2016-03-31 20:15:4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박경희 첫 장편소설 ‘바람의 기록’ ‘하늘의 신이시여, 티베트를 보소서! 대지의 어머니시여, 당신의 자비로 티베트를 생각하소서!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여, 진실을 봐주세요! 이 맑고 깨끗한 눈의 나라를 붉은 피로 물들이고 폭력적인 군대로 채우고 끊임없이 폭력을 행사해도, 용기를 잃지 않는 눈의 나라 자손들은 정신의 활로 생명의 화살을 쏘아 현실의 전쟁에서 이길 것입니다.’

티베트의 작가 구둡이 분신 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겨 놓은 유서이다. 분신 당시 43세. 그이뿐 아니라 2009년 처음 승려가 분신을 시작한 이래 일반인들까지 가세해 지금까지 140명을 넘어선 상태다. 중국은 1950년 8만의 인민해방군을 앞세워 티베트를 공격해 일방적으로 티베트의 ‘평화적 해방’을 선언했다. 티베트인들이 신봉하는 불교는 훼손되고 짓밟혔다. 달라이 라마는 북인도 다람살라로 가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달라이 라마의 요청으로 티베트인들은 무장은 풀었지만 스스로 몸을 태워 세계에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는 소신공양 행렬이 끊이지 않는 현실이다. 

티베트의 기도 깃발 룽다(風馬·티베트어), 사각의 오색천에는 부처의 말씀과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gettyimagesbank
박경희(51)의 첫 장편소설 ‘바람의 기록’(이리·사진)은 다람살라와 한국을 무대로 티베트인들의 고난과 저항을 사랑을 매개로 그려낸 작품이다. 티베트인들의 소신공양을 소설로 담아낸 경우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 앞에서 소수자들의 뼈아픈 현황을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할수록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불태우는 가슴 아픈 행진은 쉬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지훈’은 명상을 배우기 위해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간다.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의 공개 가르침에 참여하고 ‘빼마’라는 여성으로부터 티베트어를 배운다. ‘빼마’는 우리말로 연꽃. 10살 때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는 일행에 끼어 다람살라로 망명했다. 그네의 아버지가 딸이라도 제대로 교육받고 자유를 누리라고 양 열 마리와 보리를 팔아 여비를 마련해 등을 떼밀었다.

티베트인들의 고난과 저항을 첫 장편소설에 담아낸 박경희씨. 그는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티베트인들이 얼마나 힘들면 자신의 생명을 태우면서까지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겠느냐”고 말했다.
지훈은 티없이 맑은 빼마에게 연정을 품지만 애써 그녀를 외면했다. “그저 지나가는 감정이라면, 채워지고 난 후 증발해버릴 욕망이거나 곧 차갑게 식어버릴 열정이라면, 망명사회의 일원인 그녀를 두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릴 여행객이 되고 말까봐 두려워서.” 헤어질 때까지 그네의 손은 두 번 잡아 보았을 뿐이다. “가녀린 어깨, 갸름한 얼굴, 호수처럼 맑고 때로 파문이 일 듯 흔들리는 눈동자, 길지도 짧지도 않은 가는 손가락, 처음 만나 악수했을 때와 마지막 버스에 오를 때, 단 두 번.”

한국으로 돌아와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도시 외곽에 오두막을 지어 명상과 생업을 오가는 지훈. 그는 호수에 피어 있는 연꽃이 불타는 꿈을 꾼 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6년이나 지난 빼마의 행적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부터 일곱 번째 주가 지나는 과정을 그려낸다. 어렵사리 연결된 빼마를 만나기 위해 네팔로 날아간다. 그는 “몸속으로 오색의 물결이 흘러드는 듯, 붉은 피가 무지개 빛깔로 변한 듯, 뇌와 호르몬의 대략 난감 총체적 가동과 집중과 변환을 유발하는, 기쁨과 고통과 착각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하는 이것, 사랑”을 이제 믿는다. 빼마의 뒤늦은 고백.

“당신이 다람살라에 머물던 3개월 동안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죠. 당신의 눈빛과 말과 태도에 설레고 당황했던 것을 당신은 전혀 몰랐겠죠.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가며 나를 휘저었어요. 야크 우유를 휘저으면 버터가 남지만, 당신이 떠난 후 내겐 허전함과 슬픔만 남았죠.”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짐작대로 빼마는 소신공양을 향해 나아간다. 그네의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결심에 발길을 돌리던 지훈은 불타는 연꽃을 향해 전력을 다해 질주한다. 그들이 이승에서 살아남아 사랑을 쟁취했는지는 알 길 없다. 다만 “견고해 보이던 세계의 틈이 벌어졌고 경계가 사라졌고 마음의 빛으로 모든 세상이 환하게 빛났다”고 작가는 적었다.

박경희씨는 영화아카데미 출신 영화감독으로 장편 데뷔작 ‘미소’로 56회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밴쿠버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청소년기에는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프랑스에 유학해 사진과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판에서 오래 살다가 뒤늦게 이 장편을 처음 상재했다. 다람살라에 명상을 배우러 여러 해에 걸쳐 짬짬이 다녀왔다는 그는 “티베트인들의 100번째 분신 소식을 접하고 급한 마음에 이 소설을 서둘러 탈고했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장인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은 “수행의 숲길을 걷듯이 읽었다”면서 “위대한 진실, 끝없는 고귀함, 경이로운 지혜가 곳곳에 깃들어 있다”고 추천사를 붙였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