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57) 시인을 만난 곳은 세종시 ‘해피공군’ 아래층 커피숍이었다. 7년 만에 나온 그의 다섯번째 시집 ‘분홍 나막신’(문학과지성사) 이야기를 들을 겸 김영남 시인이 생업을 꾸리는 현장 가까이에서 셋이서 합류하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가 버스를 네 번씩이나 갈아타고 올 줄 알았다면 보은으로 갔을 것이지만 정작 그는 버스시간표가 머릿속에 들어 있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고, ‘안부’도 버스를 기다릴 때 떠올린 것이라고 했다.
충북 보은에서 문우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네 번 갈아타고 세종시에 온 송찬호 시인. 그는 “자정 너머 달리는 심야 막차 풍경 같은 고단한 풍경의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간다”고 다섯 번째 시집 ‘자서’에 썼다. |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사이렌 소리라니! 생의 고통을 사이렌이라는 청각으로 환치시킨 감각이 놀랍다. 시적 화자는 정황상 옆구리에 칼을 맞은 지 꽤 시간이 지났고 피는 골목 끝까지 흘러가 살기는 이미 그른 것 같다. 피도 붉고 장미도 붉고 오래 변치 않을 불후를 갈망했던 이의 눈꺼풀 아래로도 붉은 죽음이 온다. 어떤 뜨거운 사연이 이런 시를 쓰게 했느냐는 헐거운 농담에 송찬호는 “오래 집을 떠났다가 고통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정황이니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어긋난 삶일 것”이라며 “통 못 보던 이를 상가에서 죽은 자와 산 자로 만나기도 하듯 만남이란 극단적인 고통을 전제로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상적인 소재보다는 사회적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시들이 마뜩지는 않은데 관건은 현실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건드리느냐이겠지요. 완전히 현실을 떠난 시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시를 쓸 때 구체적으로 희로애락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아요. 그걸 감추거나 구부려서 제가 드러내고자 하는 시적 의도대로 언어를 운용해온 편입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시집에는 한국 사회의 어둡고 일그러진 모습들이 많이 드러난다. 날것의 풍자는 아니다. 이를테면 ‘귀신이 산다’는 광복 이후 전쟁과 독재의 시절을 거쳐온 지금까지도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쌈질하는 현실을 서글프면서도 섬뜩하게 그려낸다.
진영 논리로 찢어진 현실을 이만큼 우화적으로 선명하게 풍자한 시도 드물다. 전쟁과 독재의 시절에나 살았을 법한 ‘이념’이라는 귀신이 대지의 관을 뚫고 나와 노숙자처럼 활보한다. 그 귀신은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 다니며 히죽거린다.
“저 물의 깨진 안경을 보오/ 저 물의 젖은 손수건도 보오/ 물속에 4인 가족 자동차가 살고 있소”로 시작하는 ‘저수지’ 같은 시편도 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선 대표적인 경우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이승에서 시달린 일가족의 사연이 드러난다. “저들이 어떻게 사나 가끔씩/ 돌을 던져보아도 좋소/ 물가까지 쫓아온 빚쟁이들도 안부를 묻고 가오/ 찢어진 물은 곧 아물 거요/ 벌써 미끄러운 물 위로 바람이 달리고 있소”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는 시들이 눈에 띄기는 하되 송찬호만의 사유가 드러나는 고전적인 시편들이 여전히 더 많은 편이다. “멀리서 보니 그것은 금빛이었다/ 골짜기 아래 내려가보니/ 조릿대 숲 사이에서/ 웬 금동 불상이/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금동반가사유상’은 송찬호가 발견한 득의의 장면이다. 그는 “경배의 대상이었다가 쓰임새가 다 되어 금칠도 벗겨지고 절에서 버려졌을 때, 억압이나 경배의 형식에서 자유롭게 풀려났을 때 종교적으로 더 장엄해지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동시집 ‘저녁별’을 내기도 했고 두 권 분량의 동화도 이미 써놓았을 정도로 아이들의 세계에도 관심이 깊은 만큼 이번 시집에서는 우화적인 틀로 사물과 사람과 욕망을 들여다보는 시들도 많이 보인다.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로 이어지는, 억압이나 굴레로도 작동하는 사랑의 양면성을 묘파한 표제작 ‘분홍 나막신’이 대표적이다.
“다른 시인들의 시각이나 상상력이 사물들을 다 털어갔는데 거기에서 내가 건질 것은 무언가 고민이지만 제 나름으로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면 응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천재들은 뛰어난 직관과 상상력으로 바로 발견하겠지만 저는 오래 건드리고 두드리고 들여다봅니다. 시인의 호명을 기다리는 것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보은 시골집을 떠나는 일이 많지 않은 송찬호는 “문단 모임이나 행사에 불려나가는 일도 거의 없지만 소외감을 느껴본 적은 없다”면서 “성격 자체가 단순하고 단조로운 것에 잘 적응할뿐더러 전혀 따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게 사는 시인을 두고 아내조차 “신기하다”고 말한다며 그는 옅게 웃었다. 그날 저녁 시인은 ‘다행히’ 다시 버스들을 갈아타고 늦은밤 보은까지 돌아갈 일은 없었다. 오랜만에 중원에서 만난 이들은 동학사 앞까지 나아가 ‘사모(思慕)의 거미줄을 쳐놓고’ ‘천둥으로 울면서 돌아올’ 장미를 말하며 붉게 밤을 새웠다.
글·사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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