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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보수는 진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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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8 22:23:37 수정 : 2016-03-29 02: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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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민주화 세력 손잡은
26년 전 3당통합 이후
변화 거부하고 현실 안주
친박 공천 난장으로
수준 이하 실체 드러낸
보수·새누리당은
솔로몬 왕 앞에 선 두 어미 중
참 어미인가 거짓 어미인가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은 1990년 1월 3당합당을 결행하면서 ‘모든 온건중도 민주세력이 다같이 참여하는 국민정당’으로서의 ‘민주자유당’ 탄생을 알렸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었고, 민정당과 공화당은 호랑이 굴에 ‘내각제 그물’을 쳐 놓은 것이었다. 세 계파가 각자 다른 꿈을 꾸며 한 지붕 세 가족의 불안한 동거를 시작했지만, 그것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손잡고 보수의 변신을 꾀한 파천황이었다.

김영삼은 합당 3년 만에 호랑이를 잡는 데 성공했고 문민정부 출범을 알렸다.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이 추진되면서 ‘3당통합 신당 선언’이 비로소 실현되는 것 같았다. ‘중도민주 세력의 대단합으로 큰 국민정당을 탄생시켜 정치적 안정 위에서 새로운 정치질서’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보수의 변화는 거기까지였다. 문민정부 종료와 함께 보수는 다시 3당통합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 당파적 이해로 분열하고 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지난날의 배타적 아집과 독선, 투쟁과 반목의 구시대 정치를 활활 타는 용광로 속에 불사르지도 못했다. 

김기홍 논설실장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 서청원·이인제 의원 등은 민자당 계보를 이은 여당에 남아있는 3당통합의 흔적이다. 김영삼의 길을 함께 간 이들은 당 대표 또는 7선, 6선 의원의 최고위원으로 당을 이끌고 있으나 처지가 하나같이 옹색하다. 당 대표는 친박에 포위돼 근근이 연명하고 있고, 두 원로는 친박 옆에서 곁불을 쬐며 안온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3당통합 후 당 간판을 세 번이나 고치고 사람이 바뀌었어도 그렇게 18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보수 울타리 안에는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처럼 더러운 물만 고이고 있다.

공천 난장은 새누리당의 수준을 확인시켜 주었다. 칼을 맘껏 휘두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당 정체성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실용주의 정신과 원칙에 입각한 통합과 조정의 리더십으로 합리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공당임을 부정한 것이다. 친박의 친박에 의한 친박을 위한 사당(私黨)임을 선언한 것이다. 그 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급 액션 장면이었다. 친박의 불통 리더십, 이한구의 독선 리더십이 낳은 예고된 야단법석이다.

새누리당이 참 좋은 보수로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있었다. 여당도 놀라고 야당도 놀란 지난해 4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대표 연설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김종인표 ‘경제민주화‘로 유권자 마음을 얻었듯이 유승민표 ‘ 따뜻한 보수’를 끌어안았더라면 보다 품격 있고 매력 있는 보수를 보게 되었을지 모른다. 유승민표 보수가 설령 ‘국민도 속고 나도 속은’ 경제민주화 공약의 전철을 밟더라도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 정치’를 향한 희망의 불씨는 남겨놓았을 수 있다. 보수는 새로운 지평을 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친박은 레이저 광선으로 유승민과 따뜻한 보수를 ‘배신의 정치’로 낙인찍었고 보수는 다시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보수는 무능한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다. 생산적인 비전도 품지 못하고 있다. 친박의 패권 공천은 보수와 여당의 그런 진면목을 드러냈다. 지금의 여당을 믿고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도 좋은 건지 의심하는 국민이 늘었다. 김무성 대표는 어제 중앙선대위 발족식에서 “과거에 얽매인 세력, 국정에 브레이크를 거는 세력을 응징하자”고 야당을 겨냥했다. 그 말을 듣고 제 발 저린 여당 인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보수에게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정치는 생물이고 국민 마음은 바람 앞의 갈대 같은 것이다. 단단한 콘크리트가 언제 어떻게 균열이 일어나 부서질지 모른다.

솔로몬 왕 앞에서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두 어미가 있었다. 우리 앞에서 국민이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는 새누리당에게서 아기를 포기할 테니 거짓 어미에게 주라고 애원하는 참어미의 진심을 읽을 수 없다. 보수가 달라지지 않으면 그곳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김기홍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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