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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치마가 짧아서 샘들 수명이 짧아지나요

입력 : 2016-03-26 03:00:00 수정 : 2016-03-25 19: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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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보다 높은 꿈과 바닥보다 낮은 삶
삶의 간극 살아가는 10대들 이야기
청소년 눈높이로 그들 일상 시에 담아
어른에겐 뜨끔함… 10대에겐 시원함이…
복효근 지음/창비교육/8500원
운동장 편지/복효근 지음/창비교육/8500원


모의고사 시험지 나누어 준 뒤 소리 죽여 놓고 뒤에서 카톡하시는 샘, 그토록 사랑한다 하시는 제자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시험을 보는 동안 다음 문제에 대하여 논술을 한번 작성해 보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1. 우리 치마 길이가 짧아서 샘들 수명이 1초라도 짧아진다는 이론이 있으면 구체적 근거를 들어 논술하시오./2. 우리가 선크림 좀 바르고 입술을 짙게 발랐다고 “덥다, 더워.” 하시는데, 우리가 화장한 거하고 오늘 날이 더운 거하고 인과관계를 밝혀 서술하시오./3. 우리가 침 흘리며 책상에 엎드려 잤다고 “그래가 어트케 남자 만나 시집갈 기고? 쯔쯔쯧.” 하시는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밝히시오.(말끝마다 “여자가, 여자가 돼가꼬 말이야 ···” 하시는데 전생에 여자에게 원수진 일이 있는지만 써도 됨.) (‘우리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부분. 62쪽)

청소년 한 명, 한 명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쓴 시 60편을 모은 청소년 시집이다. 친구가 건네준 붕어빵의 온기,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두근거리며 설레는 마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달라지는 내 몸, 꼭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밉기도 좋기도 한 선생님, 가끔은 버거운 부모님의 사랑 등을 소재로 한 시들은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출발해 그들의 속말에 다가선다. 시인의 따뜻한 눈길이 머문 열여섯, 열여덟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

시들은 하늘보다 높은 꿈과 바닥보다 낮은 삶 사이에서 살아가는 십대들을 이야기한다. 친구와 슬리퍼를 한 짝씩 바꿔 신고, 체육관 지붕에다 체육복을 던진다. 이유를 댈 수 없는 별난 짓만 골라서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슬리퍼를 한 짝씩 바꿔 신으면 둘이 하나가 되어 온 세상이 우리 것 같아진다는 것을, 지붕 따윈 너무 낮아 구름 정도는 타고 올라가야 우리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

‘이의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자리 바꾸기’, ‘주제에’ 등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자리를 한번 바꿔 보자고 제안한다. 정말 하면 다 되느냐고, 우리가 화장을 하면 어떤 큰일이 나느냐고, 하루 여덟 시간을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잘 생각해 보면 청소년들이 선크림 좀 바르고, 입술 좀 짙게 칠한다고 큰일이 나진 않는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의 규정을 뒤집었을 때 만나는 진실들은 이 시집을 읽는 어른들에게는 가슴 뜨끔함을, 청소년들에게는 속 시원한 청량감을 안겨준다.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붕어가 다섯 마리//내 열여섯 세상에/가장 따뜻했던 저녁(‘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전문. 10쪽)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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