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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효된 쌀·보리 쌉쌀한 맛에 매료
인류 술에 대한 갈망… 농경사회 이끌어
고대인들 제례 의식에 술 바치고…
술은 종교·예술 다양한 발전의 원동력
패트릭 E 맥거번 지음/김형근 옮김/글항아리/2만2000원
술의 세계사/패트릭 E 맥거번 지음/김형근 옮김/글항아리/2만2000원


알코올로 만든 음식 술을 통해 보는 인류문명사이다. 인류학자들은 술의 기원을 400만년 전으로 본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인 술은 인간에게 해로운가 이로운가.

술이라는 ‘마약’이 인류 역사상 전면적으로 금지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쟁터에서도 술은 고통을 줄이고 감염을 막고 질병을 치료한다. 심리학적·사회적으로는 일상의 괴로움을 덜어주고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이는 물론 적당한 양의 술을 마셨을 때의 이야기다. 

미 펜실베이니아대 인류학 겸임교수인 저자 패트릭 맥거번은 술의 역사를 탐구해 이 책을 냈다.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의 숙성 과정과 맛을 현란한 미사여구로 묘사했다. 루이 파스퇴르는 “와인의 맛은 우아한 시와 같다”고 찬양했다. 저자는 아마도 술이 없었다면 인류 문명도 없었을 것이라는 ‘과장’도 서슴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넌센스일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술은 존재했다. 원시인들은 물웅덩이에 우연히 떨어져 발효된 보리나 쌀과 같은 발아 곡물들을 주워 먹었을 것이다. 달콤 쌉쌀한 맛이 깃든 곡물이 농경의 시작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농경의 기원은 배고픔보다는 갈증이 더 큰 계기였을 것”이라며 ‘맥주에 대한 갈망’이 바로 농경 정착사회의 시작이라고 했다. 우연히 침투한 효모의 도움으로 등장한 술은 발효 음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다. 술은 인간 자의식을 촉진하고 예술, 종교 등 인류의 독특한 특성을 끌어냈다.

중국 윈난성의 주민들은 전통 방식대로 술항아리에 둘러앉아 갈대 빨대로 쌀로 만든 술을 빨아 마신다.
글항아리 제공
피라미드나 잉카 궁전 등 인류 문화의 위대한 유적을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일꾼들에게 많은 양의 술이 제공된 덕에 오늘날 우리가 이런 유적을 볼 수 있었다. 고대인들은 술을 바치고 마시는 것으로 종교의식과 통과의례를 치렀는데, 이는 오늘날 천주교 미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책에서는 저자의 고고학적 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고대 시대 사용된 용기 내부의 잔여물을 분석해 술의 성분을 밝혀낸다. 포도나 산사나무열매 속 타르타르산 성분이나 술에 첨가됐을 꿀, 쑥, 국화, 나뭇진, 대추야자 등의 성분이 검출된다. 이 같은 고대 양조자의 기술이 오늘날 이어져 지역마다 독특한 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처럼 알코올에 탐닉하도록 만들었을까. 단순히 알코올의 몽롱함이 아니라는 것. 자극적인 알코올 향은 고당도 에너지원이다. 잘 익어 벌어진 열매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달콤한 액체는 수분과 양분이 이상적으로 조합된 영양분이다. 에너지원이 풍부한 당분과 알코올을 실컷 먹어두는 것은 자원이 부족하고 적대적 환경에서 생존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은 대부분 ‘술고래’였다. 신이나 조상과 접촉하는 의식을 치를 때 술을 곁들이지 않은 문화란 거의 없다. 음주는 환각을 유도한다. 종교적 의식에서 한껏 고양된 주술사가 자신의 역할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게 만들었다. 고대 지도자들은 가장 섬세한 예술가였으며 음악가였고 몽상가였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기원전 3000년부터 나일 삼각주에 왕실 맥주 또는 와인 제조 공장을 만들었다. 와인 제조 공정을 상세하게 묘사한 그림이 파라오들의 무덤 속에서 발견된다.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나 무덤 내부에선 맥주 제조과정을 담은 흔적들이 많다. 그림이나 무덤 안에 있는 맥주 제조 시설은 왕들이 현세에서와 같이 사후에도 마음껏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좋은 술에 취하는 기회는 곧 권력을 의미했다. 고대 시대에는 문상객이 소비할 아주 많은 양의 술을 확보해야만 비로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비용 문제로 장례식은 몇 달 혹은 몇 년씩 미루어지기 일쑤였고 그 기간 동안 시신은 방치되었다. 이렇듯 고대인들은 술을 바치고 마시는 것으로 종교의식과 통과의례를 치렀다.

저자는 말미에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금주가와 너무 많이 마시는 술고래 모두 수명이 짧다는 통계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술의 유용성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알코올과 뇌세포의 관계, 인간 수명과 연관된 과학적 사실들도 함께 수록돼 있다.

저자는 책 말미에 “누구나 정신을 잃고 인사불성이 되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한 적이 많을 것”이라면서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폐해에도, 인류가 술을 끊지 못한 이유를 이 책에 담았다”고 고백했다.

정승욱 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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