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에 염전이 생긴 것처럼 눈물 많은 한 해였다. 한반도 전체가 소금 창고에 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바람결 속이었다고 할까.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천국 혹은 극락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던 한 해.”(‘굿바이와 굿모닝’)
‘눈송이 하나씩의 무게’에서는 “최선을 다해 이 무게를 견디고 있는 지금 여기, 산다는 것 자체가 정성인 시절, 지상에 내리는 눈송이 하나하나조차 저마다의 무게를 지고 간신히 착지하는 듯한 날들, 그 여린 발자국들 위에 한 가닥씩의 빛이 드리우기를” 기원한다. 그는 “희망이 없는데도 끝내 살아, 끝끝내 아름다워지는 사람들이 성인(聖人)인지도 모른다”면서 “어쩌면 성인은 도처에 있는지도 모른다”고도 썼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만의 세상에서 도대체 왜, 어떻게 예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물으면서 서정시는 쓰여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랑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라는 견해는 어떤가.
음악에도 시선이 간다. 강허달림의 노래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흐느낌’이다. “슬프되 슬픔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슬픔을 몸속으로 깊이 스미게 했다가 이윽고 비상을 시작한 연의 줄을 풀어주듯 조금씩 간곡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이다. 국카스텐, 손병휘, 바렌보임 들이 등장하고 영화와 철학도 그네의 감성에 새롭게 용해된다. 짧은 글들을 5부에 걸쳐 배치하고 각 파트 사이에 ‘카덴차’라는 부제를 붙여 자유로운 메모 형식의 산문을 첨부해 읽는 맛을 돋운다.
산문집 제목에 ‘천사’를 끌어들인 것은 “비루한 시대에 겨우겨우 간신히, 가까스로 존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훼손되지 않는 한 발자국씩을 곧추세우는 어여쁜 힘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나의, 우리 속의 천사임을 믿기” 때문이다. 갈수록 부상당하는 천사가 많아지는데 부상이 거듭될수록 자기가 천사임을 잊어버린 천사들이 많아진다고 김선우는 안타까워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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