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로소 보이는구나/ 봄날 하루 허공 속의 문자/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 이생의 슬픈 일마저 내 가슴에서 떠나는구나/ 귀가 먹먹하도록/ 눈송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벚꽃을 보면/ 세상만사 줄을 놓고/
나도 꽃잎 따라 낙하하고 싶구나/ 바람을 타고/ 허공 중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무슨 절규, 무슨 묵언 같기도 한/ 서로서로 뭐라고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 봄날 허공 중에 떠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구나”
나도 꽃잎 따라 낙하하고 싶구나/ 바람을 타고/ 허공 중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한 장마다/ 무슨 절규, 무슨 묵언 같기도 한/ 서로서로 뭐라고 소리치는 마지막 안부/ 봄날 허공 중에 떠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구나”
“몇날 며칠 내내/ 비 오다 바람 불다/ 혼자서 바라보는 허공/ 빗방울 묻은 유리창에/ 일그러진 세상이 흘러내린다/ 그 안에 문득 쭈그러진 내 얼굴이 보인다/ 죽은 아우와 이탄 시인이/ 함께 찾아온 지난밤은/ 아쉬운 봄날/ 그 밤에 마신 술의 취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망자와 함께/ 지우고 또 지우며 바라보았던/ 유리창 바깥의 세상/ 거기, 문득 나 혼자 서 있다”(‘유리창에 번지다’)
허공에는 꽃잎만 날리는 게 아니다. 일그러진 세상도 흘러내리고 쭈그러진 시인의 얼굴도 보인다. 죽은이들이 찾아와 떠 있을 때도 있다. 허공 바깥의 허공에 문득 시인 혼자 서 있는 듯한 허무가 도저하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의 비중이 큰 편이다. 아우의 죽음도 서럽지만 채 피지 못한 많은 생명들이 죽어간 세월호 참극은 나라가 상(喪)을 치른 아픔이다.
“나라 안이 상중喪中이라/ 봄날마저도 가슴에 노란 흉장을 다는구나/ 올해 봄이 왜 슬픈지 너희들은 알겠구나/ 진도 팽목항 애끓는 포구/ (…)/ 봄날마저도 상중이라/ 꽃들마저 상복을 입는구나/ 하얀 미사포 머리에 썼구나/ 눈 감고 가는 봄날/ 천지가 하얗게 저물어 가는구나”(‘나라 안이 상중喪中이라’)
열한 번째 시집을 상재한 김종해 시인. 그는 “무슨 슬픔으로 살아가더라도 살아 있는 날들이 그대의 낙원”이라고 새 시집에 썼다. |
“이별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차라리 산 자들의 고문 장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마저 나는 믿을 수 없구나/ 가슴속에 담아 둔 말 쏟지 못하고/ 아우여, 나는 아우의 여윈 손만 잡는다/ 눈을 감으면, 아우의 전 생애가/ 한꺼번에 온몸에 감전되어 흘러내린다/ 너를 위해 세상의 어떤 말이/ 위로가 되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아우여, 나는 너의 여윈 손만 잡는다”(‘잘 가라, 아우’)
시인은 “먼저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지상의 대합실은 슬픔으로 붐빈다”고 ‘호스피스 병동’에 썼다. 호스피스 병동은 유난히 죽을 자와 산 자가 북적거리는 눈에 띄는 공간이지만 기실 떠나고 배웅하고 돌아서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은 바로 이곳 광활한 이승일 터이다. 우리는 모두 정거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시인은 아우의 뼛가루가 깃든 강 건너 절두산을 보며 “아우가 살던 집을 옮겼다”고 썼다. 시인은 비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되뇐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고/ 나는 창 안에서 홀로 젖는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 삶은 혼자서 걷는다는 것/ 우리는 서로 스쳐가고 있을 뿐”(‘그대를 보내며’).
196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53년째 시업을 이어왔지만 “아직 시인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라는 김종해 시인은 “허공은 허공이 아니고 잠시 모습을 보이는 숨어 있는 선(禪)”이라면서 “누구나 알아듣고 공명하는 그 깨침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고 시인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