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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우리시대 난민들 함께 부대낄 희망의 집이 필요하다"

입력 : 2016-03-03 19:45:34 수정 : 2016-03-03 21: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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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에 장편 ‘피에로들…’ 펴낸 소설가 윤대녕 소설가 윤대녕(54)씨가 11년 만에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을 펴냈다. 우리 시대 ‘난민’들의 현주소를 천착한 작품이다. 작가가 포착한 우리 사회의 난민이란 사전적 의미의 피난민들이 아니라 가족은 해체되고 일그러진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정체성조차 모호한 이들을 일컫는다. 소설의 무대인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 같이 사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30대의 남자와 여자 둘, 현대사를 관통해온 노파는 서로 핏줄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모두 나름의 상처를 내재한 인물들로 이야기가 진전됨에 따라 그 사연이 드러난다.

서울 광화문 인근 성곡미술관 찻집에서 만난 소설가 윤대녕. 그는 “문학이 환호받던 시절은 지나갔다지만 여전히 모듬살이의 총체적 건강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서 “불안한 삶 자체를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아주는 게 문학”이라고 말했다.
“저 자신이 많이 떠돌아다닌 노마드였는데 그 시절에는 주로 개별적인 난민들을 소설에서 많이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공동체 배경의 난민 이야기에 집중한 거지요. 생물학적 나이가 중요하더군요. 사십대 후반에서 쉰으로 넘어오는 즈음부터 기성세대에 대한 자각이 커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몸의 노쇠 사이에서 회한 같은 게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옮겨가는 과정이었겠지요. 시각이 타자로 옮겨가고 타자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공동체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1990년 등단한 윤대녕은 신경숙과 더불어 90년대 대표작가로 거론됐다. 군사독재 치하에서 문학이 민주화의 도구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던 80년대를 지나며 동구가 무너지고 광장에 지친 이들이 개인의 내밀한 밀실을 다시 갈망하면서 1994년 윤대녕이 발표한 첫 창작집 ‘은어낚시통신’은 그러한 지향을 상징적으로 대변했다. 시원을 찾아나서는 존재의 깊은 고뇌와 방황이 윤대녕의 세계였다. 리얼리스트들의 비판에도 자신의 색깔을 고집스럽게 바꾸지 않았지만 이번 장편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말이다. 제주에서 살다가 올라와 2005년 장편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펴낸 이후 1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윤대녕은 2008년부터 오랜 전업작가 생활을 청산하고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살기 시작했다.

“강의를 설렁설렁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주중에는 소설을 쓸 짬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주말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고 일요일은 다시 강의 준비를 합니다. 그동안 장편은 여러 번 시도해서 400장 정도까지 쓰다가 일관된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어 덮은 적도 더러 있습니다. 방학이 돼야 소설을 쓰러 집을 떠나곤 하지요. 가족을 건사하기 위한 노동은 거룩합니다. 때론 쾌감까지 느낍니다. 쓸 때는 최선을 다해서 쓰지만 일상인으로서 삶 자체를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전업작가로 살 때 소설 쓴다고 일상에서 벗어나 가까운 이들을 힘들게 했던 건 회한입니다.”

교수로 살면서 그동안 산문집과 단편소설 모음집을 각각 2권씩이나 냈으니 창작 성과가 그리 부진한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호흡과 리듬이 필요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기에는 쉽지 않은 여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학동네’의 연재 청탁을 미루고 미루다 ‘피에로들의 밤’ 연재를 시작했는데 1회를 쓰고 난 뒤 바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겨우 2회를 쓰고 끝내 3회는 펑크를 내고 말았다. 세월호는 가뜩이나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의 윤대녕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혔고 기성세대와 공동체에 대한 무거운 성찰을 이끌어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많이 흔들리고 막막했습니다. 학생들 보는 게 죄책감이 들어 강의를 못 들어가겠더라고요. 나름대로 절박하게 소설을 써왔지만 기성대의 무책임에 대한 자각과 자아비판이 앞서면서 새삼스럽게 문학의 효용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동어반복이라는 비판까지 들으면서 내 나름의 문학적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는데 세월호가 1970~80년대 문학 같은 리얼리즘적 자각을 일깨우더군요. 이번 장편은 연재를 끝내고도 1년 넘게 무수히 고쳐서 내놓은 겁니다.”

윤대녕은 지난해 연구년을 맞아 1년 동안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 아시아학과 방문학자로 지내다 왔다. 그에게는 장편을 마무리하고 고칠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 기간이 결코 편안했던 건 아니었다. 쓰고 고치는 와중의 스트레스로 응급실까지 실려간 뒤 한 달 동안 누워서 지내기도 했다. 그만큼 이번 장편에 쏟은 공력은 그동안 펴낸 소설들에 비해 다른 질감이다. 윤대녕 문체의 시적인 아우라가 찬찬히 뜯어보면 여전히 숨어 있긴 하되 각 인물들의 서사를 건조하게 드러내는 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중심 화자인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 출신 36세 김명우에 작가의 정체성이 많이 투사돼 있는데 그는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예술가 성장소설’ 스타일의 캐릭터라고 윤대녕은 말했다. 현대사를 관통해오며 영욕을 겪은 ‘마마’라는 늙은 여자를 수직으로 세우고 기성세대 폭력의 희생자인 고등학생 정민, 생부를 모르는 현주, 정체성을 상실한 젊은 세대의 상처를 대변하는 대학 휴학생 윤태와 영혼의 자유를 갈망한 윤정 들은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고흐의 그림 ‘꽃 피는 아몬드 나무’가 걸린 집에서 공생한다.

윤대녕은 김명우의 입을 빌려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들 모두가 실은 난민이나 고아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하거니와 “수년 전부터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했는데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라고 작가의 말에 썼다. 그는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가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들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가뜩이나 갈수록 개인들이 더 단자화되는 세상에서 유사 가족 같은 연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산다는 것은 결국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타인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문학은 모듬살이의 총체적 건강성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자의 절대적 고귀함에 대한 인식,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관계의 공동체에서 서로서로 귀한 마음을 가지는 삶에 어떤 영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삶 자체가 불안한 것인데 계속 살아갈 이유를 제공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소설 문학의 역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윤대녕은 “문학에 환호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같지만, 그렇다 해도 삶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통해 존속되게 마련이므로 다시 또 쓸 수밖에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썼다. 이야기가 무엇이기에 삶의 필수 요소인가. 그는 “삶은 시간적인 것의 연속인데 시간 경과의 내용이 없으면 정체성이 사라지고 타인과의 관계도 불가능해진다”면서 “이야기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다. 이야기가 없는 존재란 삶이 없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연재 당시에는 피에로들의 ‘밤’이었지만 책으로 펴내면서는 ‘집’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이 시대 난민들에게는 짧은 몽환보다 같이 오래 부대낄 집이 더 절실한 게 맞다. 가련한 존재들이 밤새 이야기를 나눌 그런 집, 그리하여 어쩌면 그들 사이에 연민과 연대가 싹틀지도 모를 그런 희망의 집.

글·사진=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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