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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필작가 눈에 비친 파란만장 노파의 ‘부엌인생’

입력 : 2016-03-03 20:31:48 수정 : 2016-03-03 20: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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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설원 장편 ‘나의 요리사 마은숙’
“어머니, 가족이 뭘까요?”

“밥이지, 뭐. 따뜻하면 따뜻한 대로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먹는 밥. 차가운 밥이라고 버리남? 따순 물에 말아 먹든가 비벼 먹든가 하지. 가족도 그렇잖어. 가족이 어디 따뜻허기만 혀? 차가워도 보듬고 살아야지.”

묻는 사람은 마은숙, 대답하는 이는 고택에 홀로 사는 늙은 여인 심명자다. 마은숙은 노파의 피붙이가 아니라 그네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목요일마다 찾아오는 대필작가. 가족이 ‘밥’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명자는 평생 최씨 집안의 소처럼 살면서 인생을 밥하는 데 바쳤다. 누구든 집에 들어오면 반드시 밥을 먹여 보내라는 시아버지의 뜻이 아니더라도 많은 일꾼들 밥상을 차리려면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부엌에서 허리를 제대로 펼 날이 없었다.

이쯤 되면 김설원(46·사진)의 ‘나의 요리사 마은숙’(나무옆의자)이라는 장편소설 제목이 의아해진다. 눈 감고도 한 상 그득하게 차려낼 심명자를 두고 마은숙이 요리사라니. 더 나아가 보자.

심명자에게는 딸 여섯과 아들 하나가 있다. 몸의 장기를 내줘도 아깝지 않을 아들 최기태가 어머니 한을 풀어주겠다고 대필작가 마은숙을 붙인 것인데, 심씨는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마은숙이 한 마디 던지면 열 마디를 내뱉어 방 안에 자기 목소리만 둥둥 떠다니는 상황으로 발전한다. 아들은 어미의 한을 풀어주면서 백년 넘은 고택을 어머니가 팔아서 자신의 출판사 운영자금으로 내놓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들의 속내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딸들은 아들에게 그 집을 다 넘겨줄까봐 노심초사하면서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까지 다 알지만, 심명자는 차츰 마은숙에게 마음을 열고 두 사람은 피붙이 못지않은 유대를 쌓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심명자가 어떻게 파란 많은 시집살이를 통과하며 밥을 지어 왔는지 구구절절 이야기가 풀려나온다. 첫날밤 도둑이 들어 ‘여자가 잘못 들어와서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는 누명을 쓰고 5년이나 독수공방해야 했던 꼬인 결혼생활 초기에서부터 “내 삶에서 밥하고 상차린 시간을 빼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싶을 정도”로 ‘밥’에 쫓겨온 그네의 세월은 눅진하고 서럽다. 말미에 이르러 마은숙이 아비와 얽힌 상처를 거꾸로 위로해 주는 역할을 맡는 심명자. 세대를 뛰어넘은 그들의 우정은 따스하고 정겹다. 이제 평생 ‘요리사’로 살아온 심명자의 이야기를 마은숙이 요리할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보다 정확한 제목은 ‘나의 인생 요리사 마은숙’쯤 될 터이다.

매일신문 신춘문예(2002)와 여성동아 장편 공모(2009)에 당선돼 문단에 나온 김설원은 “직장(단국대)에서는 김수진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일과 문학을 양손에 쥐고 있지만 균형을 잘 유지해 ‘삶에 뿌리를 내린 읽어서 즐거운’ 소설을 써보겠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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