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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의 얼굴을 한 조선은 위선의 나라였다”

입력 : 2016-02-25 20:46:56 수정 : 2016-02-25 20: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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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민의 ‘두 얼굴의 조선사’
글항아리 제공
“고위 관료들은 철학자들이다…. 인민이 이들을 판정할 자유를 갖는다.… 왕이 잘못을 저지르면 철학자들은 주저 없이 왕을 비판한다. 이는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수준이다.”

네덜란드의 인문학자 이사크 포시위스가 이렇게 극찬한 곳은 중국과 조선이다. 플라톤 이래 서구 사회가 꿈꿨던 ‘철인통치’의 전형을 조선에서 발견했다.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둔 성리학자인 양반이 이끈 조선은 왕권과 신권 사이에 끊임없는 견제가 있었던 국가라 타당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다. 양반들은 스스로 내세운 이런 이념과 가치를 실천하고 현실에 적용했는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두 얼굴의 조선사’(조윤민 지음, 글항아리)는 이런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부제에는 조선사를 ‘군자의 얼굴을 한 야만의 오백년’이라 규정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조선의 지배층은 어떤 지배 전략으로 어떤 통치 방식을 활용해 500여 년 동안 조선 사회를 지배할 수 있었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조선 지배층에 대한 초상과는 다른 초상을 그려내려 한다”고 밝혔다. 그것은 ‘청렴의 화신’, ‘꼬장꼬장한 경세가’가 아닌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충실한 지배자로서의 얼굴”이라고 전제했다. 

이황(왼쪽)과 송시열은 유림과 정계 등에서 양반을 이끈 인물로서 오늘날까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두 얼굴의 조선사’는 이들로 대표되는 조선 지배층인 양반이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이 낮고, 정적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냉혹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SBS의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고려는 ‘거악’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이성계를 정점으로 정도전, 이방원, 조준 등이 주도한 조선의 건국은 ‘선’이다. 이런 변화를 이끈 것이 고려의 ‘권문세족’을 타도한 ‘신진사대부’였다. 드라마 특유의 과장과 왜곡이 없지 않지만, 큰 흐름에서 역사학의 통설을 따른 묘사다. 이런 설명을 따르면 조선의 지배층과 시스템은 고려의 그것과 완연히 달라야 한다. 

저자는 이런 설명과 배치되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며 양반의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의심한다. 존 던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 후기를 이끈 22개 가문 중 16개 가문이 조선에서도 지배 가문으로 존속했다. 이성계가 책봉한 개국 일등공신 17명 중 14명은 고려 후기의 권세가 출신이었다. 저자는 “이런 사실은 지방의 중소 지주층 세력이라는 신흥사대부가 조선 개국의 주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고려와 조선의 지배세력은 동질성과 연속성이 강했다”고 적었다. 지배세력의 전면적인 교체가 없었기 때문에 건국세력의 개혁도 “외양만 요란할 뿐 실상은 지배층 중심으로” 이뤄졌다. 특히 개혁의 핵심인 농민을 제외한 국가업무 종사자에게 토지에 대한 징수권을 주고, 양반 가문의 사유지는 그대로 두는 과전법을 시행해 “기득권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변화였을 뿐”이었다.

백성을 근본으로 두었다는 양반의 유학사상 역시 도마 위에 올렸다.

15세기 후반 권력을 거머쥔 사림은 민생을 돌본다는 기치를 내걸었지만 “백성의 삶을 안정시킬 수 있는 조세와 군역 등의 제도 개선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비교적 미약했다”고 규정했다. 이런 비판의 구체적인 사례로 든 것이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지금도 큰 존경을 받는 이황의 6조목 상소다. 상소에서 이황은 임금에게 윤리도덕, 학문 수행 등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제도 측면보다는 수양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고 비판했다. 사림의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붕당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강하다. 사림이 도학적 명분과 의리를 내세워 유교정치를 펼쳤으나 현실 문제에 대처하는 입장 차이, 정치적 이해관계, 학맥·인맥이 연결되면서 16세기 이후 18세기까지 220여 년 이전투구를 벌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은 무엇보다 ‘위계의 나라’였다. 도덕정치로 위장한 철저한 계급정치가 관철되는 ‘위선의 나라였다”며 “지배층의 이익 확보와 욕망 추구를 ‘이’, ‘도’ 같은 사상 개념으로 포장해 신분질서와 사회의 위계구조를 영속시키고자 했다”고 적었다.

비판이 워낙 날카로워서 경우에 따라서는 비판적인 독서가 필요할 듯 보인다. 지배의 정당화를 위한 이데올로기의 활용은 조선의 양반말고도 동서고금에 있었던 일이고, 지배층의 영속성, 붕당정치에 대한 비판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이 주장했던 ‘정체성론’이나 ‘당파성론’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당파성에 대한 비판은 식민사학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사대부들 스스로도 지적했던 문제”라며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공과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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