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인의 언어로 묘사한 추억과 일상… 정겨운 문장 빼곡

입력 : 2016-02-25 20:44:17 수정 : 2016-02-25 20:44:1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나란히 산문집 펴낸 이재무·이대흠 시인 시인들이 부리는 언어는 남다르다. 그 언어가 시에서 걸어 나와 시시콜콜한 산문에 담기면 소설가를 포함한 여느 산문가들은 쉬 범접하지 못할 빛을 발한다. 시인의 산문집을 읽는 첫째 매력은 천상의 시가 아닌 지상의 구체적인 맥락에서 언어를 운용하는 그들의 진정성과 해학과 깨달음을 발견하는 묘미일 터이다. 최근 출간된 이재무(58) 시인의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천년의시작)와 이대흠(49) 시인의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문학들)에서도 그러하다.

◆‘집착으로부터의 도피’

“그동안 나는 자연과 인생을 표절해온 시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시를 위해 어제는 강에 나가 강물 두어 되 빌려다 문장의 독에 부었고, 그제는 산에 가서 꽃향기 서너 종지와 새 울음 한 봉지를 꾸어다가 시의 텃밭에 뿌려두었습니다. 오늘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교외로 나가 사정사정한 끝에 초록 말가웃을 차용해서는 시문의 채전에 거름으로 묻어두었습니다.”

나란히 산문집을 펴낸 이재무 시인. 시인의 언어로 추억과 일상을 묘사하는 이들의 산문은 거친 글들에 혹사당한 눈을 쓰다듬어줄 만한 정겨운 문장들로 빼곡하다.
이재무 시인은 자신이 ‘표절 시인’이라고 고백한다. ‘풀꽃문학상’ 수상소감이다. 시인이 자연을 표절하는 건 오래된 갈망이었으나 누가 더 근사하게 더 자연을 닮은 시를 썼는지는 후대의 평가이니 냉정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세 번째 산문집 ‘집착으로부터의 도피’에 실린 이 글에서 보듯 이 시인이 운용하는 언어는 재치발랄하다. 1부 ‘계절과 시의 순간’에서 언급하는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이다. 여름은 “숫돌을 다녀온 왜낫처럼 날 선 햇볕이 정수리를 따갑게 베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하늘의 괄약근이 약해져 걸핏하면 폭우가 쏟아지는 계절”이다. 겨울 산은 어떠한가.

“한번은 어찌어찌 하다가 밤늦게 하산한 적이 있었는데 하늘이 출렁대며 크게 몸을 흔들어대자 그때마다 우수수 쏟아지는 별들을 얼마 남지 않은 계곡의 물줄기가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이 겨울 산이기에 가능할 수 있다.”

시 같은 산문이다. 하늘이 출렁대고 허공이 받쳐준다. 이 산문집은 ‘풍경이 있는 삶’ ‘한 컷의 모노로그’ ‘나의 삶 나의 문학’ ‘나의 기원’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 가운데 가장 죄질이 나쁘고 무거운 것은 ‘집착’과 ‘울컥’이었다”면서 “울컥은 열등의식의 소산이었고 그게 도지면 위아래가 없었으며 집착은 여름날 누군가 먹다 버린 뼈다귀에 달라붙는 파리 떼처럼 집요한데 그것은 새 구두를 신고 수만 평 진흙 밭을 건너는 일처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마돈나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소돔의 이상으로 끝을 맺고 소돔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을 불태운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드미트리의 말을 작가의 말에 인용했다.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강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여전히 강마을에서 살고 있다. 강마을에 살면서, 밥과 집과 옷을 구하고, 먹고, 자고, 입고, 일하고, 놀고, 읽으며 산다. 나는 강을 놀이터로 삼았고, 강을 읽으며, 강을 따라가며, 강을 배웠다. 삶의 지혜랄 수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강에서 얻었으며 그 강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사람살이를 알 수 있었다.”

나란히 산문집을 펴낸 이대흠 시인. 시인의 언어로 추억과 일상을 묘사하는 이들의 산문은 거친 글들에 혹사당한 눈을 쓰다듬어줄 만한 정겨운 문장들로 빼곡하다.
이대흠 산문집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서문이다. 탐진강은 전남 장흥군 유치면과 장동면에서 시작되어 장흥읍의 중심을 가로질러 바다로 흐르는 강이다. 오염되지 않은 물길 굽이마다 숲과 절경과 정자가 어우러진 강이다. 시인은 이 강변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사람과 풍경과 역사를 들추어 담아냈는데, 입담이 역시 여느 산문가 뺨을 치는 수준이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마량아짐’(마량 아줌마) 이야기는 걸쭉하다. 바닷가 태생인 마량아짐은 입담이 좋아 입으로 소설을 쓴다는 ‘입문장’이다. 그 아줌씨, 전날 해삼을 넙죽넙죽 먹고 다음 날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가 속이 뒤집어져 기사 양반에게 세워 달라고 호통치는 대목은 이렇다.

“암만 고속버스라고 똥구멍 막고 달릴랍디요? 벱이고 지랄이고, 내 창새기(창자)는 브레끼가 고장나 부렀응게. 나는 여그서 서야 쓰겄소!”

추억 속 구들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구들방을 데우는 일은 사랑을 지피는 일과 같다”면서 “구들방처럼 서서히 뜨거워지고 아주 천천히 식어가는 여자와 사랑할 날을” 꿈꾼다. 시인이 태어난 마을에는 ‘보레’라는 반편이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찾아간 마을에 보레는 간 데 없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만 돌아다니는 사랑방에서 시인은 “머릿속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시를 쓰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보레가 되어 앉아 있었다”고 쓴다. 탐진강변을 무대로 삼아 옛 추억의 질감을 시인의 눅진한 언어로 써내려간 산문집이 정겹다. 시인은 “울며 바닥을 혀로 기어본 적 있느냐?/ 강이 묻는다”(‘강이 묻는다 - 탐진시편1’)고 묻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