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으로부터의 도피’
“그동안 나는 자연과 인생을 표절해온 시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시를 위해 어제는 강에 나가 강물 두어 되 빌려다 문장의 독에 부었고, 그제는 산에 가서 꽃향기 서너 종지와 새 울음 한 봉지를 꾸어다가 시의 텃밭에 뿌려두었습니다. 오늘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교외로 나가 사정사정한 끝에 초록 말가웃을 차용해서는 시문의 채전에 거름으로 묻어두었습니다.”
나란히 산문집을 펴낸 이재무 시인. 시인의 언어로 추억과 일상을 묘사하는 이들의 산문은 거친 글들에 혹사당한 눈을 쓰다듬어줄 만한 정겨운 문장들로 빼곡하다. |
시 같은 산문이다. 하늘이 출렁대고 허공이 받쳐준다. 이 산문집은 ‘풍경이 있는 삶’ ‘한 컷의 모노로그’ ‘나의 삶 나의 문학’ ‘나의 기원’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 가운데 가장 죄질이 나쁘고 무거운 것은 ‘집착’과 ‘울컥’이었다”면서 “울컥은 열등의식의 소산이었고 그게 도지면 위아래가 없었으며 집착은 여름날 누군가 먹다 버린 뼈다귀에 달라붙는 파리 떼처럼 집요한데 그것은 새 구두를 신고 수만 평 진흙 밭을 건너는 일처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고 고백한다. 그는 “마돈나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소돔의 이상으로 끝을 맺고 소돔의 이상을 가진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을 불태운다는 사실이 끔찍하다”는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드미트리의 말을 작가의 말에 인용했다.
◆‘탐진강 추억 한 사발 삼천 원’
“강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여전히 강마을에서 살고 있다. 강마을에 살면서, 밥과 집과 옷을 구하고, 먹고, 자고, 입고, 일하고, 놀고, 읽으며 산다. 나는 강을 놀이터로 삼았고, 강을 읽으며, 강을 따라가며, 강을 배웠다. 삶의 지혜랄 수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강에서 얻었으며 그 강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사람살이를 알 수 있었다.”
나란히 산문집을 펴낸 이대흠 시인. 시인의 언어로 추억과 일상을 묘사하는 이들의 산문은 거친 글들에 혹사당한 눈을 쓰다듬어줄 만한 정겨운 문장들로 빼곡하다. |
추억 속 구들방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구들방을 데우는 일은 사랑을 지피는 일과 같다”면서 “구들방처럼 서서히 뜨거워지고 아주 천천히 식어가는 여자와 사랑할 날을” 꿈꾼다. 시인이 태어난 마을에는 ‘보레’라는 반편이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찾아간 마을에 보레는 간 데 없고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만 돌아다니는 사랑방에서 시인은 “머릿속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시를 쓰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보레가 되어 앉아 있었다”고 쓴다. 탐진강변을 무대로 삼아 옛 추억의 질감을 시인의 눅진한 언어로 써내려간 산문집이 정겹다. 시인은 “울며 바닥을 혀로 기어본 적 있느냐?/ 강이 묻는다”(‘강이 묻는다 - 탐진시편1’)고 묻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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