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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어머니와 김치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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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14 21:40:10 수정 : 2016-02-14 21: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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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다른 곳에서 사면 10만원밖에 보상이 안 된다니까요.”

휴일 아침, 어머니 전화기 너머로 웬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어머니는 남성의 기세에 눌려 말 한마디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알고 보니 상대방은 며칠 전 우리 집을 다녀갔던 전자제품 수리기사였다.

이희경 국제부 기자
사건의 발단은 몇 년 전 구입한 김치냉장고였다. 그간 우리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던 김치냉장고는 지난해 말쯤부터 갑자기 전원이 꺼지거나 이상한 신호음을 냈다. 애프터서비스(AS)를 위해 방문한 수리기사는 “주요 부품이 망가졌다”며 새로 살 것을 권유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수리기사가 “폐기처분하고 다른 회사 제품을 사면 1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같은 회사 냉장고를 사야 한다”고 한 것이다. 구입한 지 5년도 채 안 된 제품인데 폐기처분 보상액이 10만원밖에 안 된다는 말에 어머니는 실망한 눈치였다. 같은 회사 제품을 사면 얼마나 보상되느냐는 말에 수리기사는 “최대한 맞춰주겠다”며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고 새 냉장고 구입을 밀어붙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콜센터에 물어보았더니 조금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회사 제품을 사면 보상을 많이 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폐기처분 보상금이 10만원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가 다시 수리기사에게 문의하자, 그는 “콜센터에 물어보지 마라. 내 말이 맞다”며 대뜸 짜증을 냈다. “같은 회사 제품을 사면 보상금을 60만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는 말에는 “그렇게 많이는 안 된다”며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내가 들은 통화도 이 내용이었다.

해당 제조사에서 보상을 많이 해준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것이 이익인 것은 맞다. 그러나 폐기처분 보상금을 고의로 줄여 말한 것에 대해서는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확한 안내가 없다는 것도 혼란스러웠고 불신이 생겼다.

김치냉장고를 보러 갔던 가전제품 매장에선 또 다른 사실도 알게 됐다. AS 기간 내에 제품이 고장 날 경우 한국소비자원이 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액수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애초에 정확한 기준이 있었지만 수리기사가 말을 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매장 직원은 “(보상 기준을) 우리한테 들었다고 AS센터에 말하지 말라”고 하기도 했다. 어떤 혜택이 있는지조차 몰라 그냥 넘어가는 소비자도 많을 것 같았다.

왜 처음부터 제대로 안내가 되지 않았냐고 항의하자, 콜센터는 “수리기사가 실수한 것 같다”며 “60만원을 보상해주고, 직원가로 추가 할인을 해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결국 할인을 무시하지 못해 그 회사에서 재구입하긴 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만약 어머니가 수리기사의 윽박지름에 못 이겨 그의 말만 따랐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비자가 제품을 살 때 제조사들은 ‘편리한 AS’에 대해 홍보한다. 하지만 AS는 따져보고 쟁취해야지, 사정을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까지 알아서 챙겨주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김치냉장고 하나를 바꾸는 데도 소비자와 기업 간의 정보 불균형, 불투명성이 숨어 있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이희경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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