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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사건' 징역 20년 선고에도 '불편한' 검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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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14 10:55:00 수정 : 2016-02-14 13: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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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아더 존 패터슨이 2015년 9월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송환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민들은 신속하게 처벌받아야 할 진범을 놓쳐 일사부재리 원칙 또는 공소시효 때문에 아예 처벌을 못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이태원 사건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패터슨과 리를 공범으로 함께 기소했어야 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이 벌어진 1997년 검찰 수사의 오류를 꼬집은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글 일부다. 지난 1월 29일 사건 발생 19년 만에 아더 존 패터슨(37)의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검찰로서는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패터슨에게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 판결 이후에도 검찰의 무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음에 따라 검찰은 ‘싸움에 이기고도 진 것 같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김후균)가 출입기자단에 ‘사실관계가 틀린 보도에 대해 해명을 하겠다’는 입장을 급하게 알려왔다. 위에 소개한 모 대학 로스쿨 교수의 기고문 때문이었다.

한 중앙일간지에 ‘시론’이라는 이름으로 실린 해당 글은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검찰이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를 공범으로 기소했다가 패터슨 단독범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며 “이는 잘못된 것인 만큼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리(38)는 패터슨의 친구로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한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한국인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가 흉기에 찔려 살해될 당시 곁에 있었다. 당시 검찰은 리를 진범으로 지목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검찰은 “패터슨을 기소하면서 리도 공범으로 기소했고, 패터슨의 단독범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1심 재판부도 패터슨과 리를 공범으로 인정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검찰이 패터슨 단독범행으로 공소장을 변경한 것은 잘못인 만큼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시론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오해한 것에서 비롯했다는 항변이다. 검찰로선 하마터면 기소 자체가 불가능할 뻔했던 패터슨을 붙잡아 재판에 넘겨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검찰이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여론이 야속할 법도 하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주요 쟁점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

그래선지 이날 검찰의 대응에선 여느 때와 다른 진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사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기도 했다. 마침 1999년 2월 전북 완주 삼례읍에서 벌어진 3인조 강도 살인사건의 ‘진범’을 자처하는 이들이 17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19년 만에 범인이 리에서 패터슨으로 180도 뒤바뀐 이태원 살인사건에 이어 삼례 3인조 사건도 17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쓴 가짜 범인 대신 진짜 범인이 등장한 셈이다. 여러 언론이 이태원 살인사건과 삼례 3인조 사건을 함께 묶어 “검찰이 수사를 엉터리로 한다”고 싸잡아 비난했다.

이태원 살인사건도 그렇고 삼례 3인조 사건도 그렇고 검찰이 수사를 잘했다고 보긴 어렵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경우 패터슨 대신 리를 살인 혐의로 기소한 뒤 리가 무죄 선고를 받자 뒤늦게 패터슨 수사에 착수했지만, 미국 국적자인 패터슨은 이미 한국을 떠난 뒤였다. 패터슨이 진범일 것이란 심증은 오래 전에 형성됐으나, 미국인인 그를 한국 법정에 세우는 일이 만만치 않아 19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삼례 3인조 사건은 진범을 자처하는 이들이 자수하면서 새삼 국민적 화제로 떠올랐다. 문제는 이들이 과거에도 검찰에 자수를 한 적이 있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이제는 공소시효마저 완료돼 진범으로 확인돼더라도 형사소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먼저 처벌을 받은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인지, 이번에 자수를 한 이들이 정말 진범인지 등은 결국 법원 재심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2009년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결국 법무부는 미국 정부에 패터슨의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2년 뒤 패터슨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에 붙잡히면서 범죄인 인도 절차가 ‘급물살’을 탔다.

미국 법원의 최종 결정에 따라 패터슨은 2015년 9월 23일 한국으로 송환됐다. 당시 인천국제공항을 나서며 “내가 왜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며 무죄를 항변한 그는 결국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지 128일 만에 징역 20년형이라는 준엄한 심판에 직면했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월 29일 이태원 살인사건 1심에서 아더 존 패터슨에게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을 선고한 직후 피해자 조중필(사망 당시 22세)씨의 어머니 이복수씨가 울먹이며 취재진에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9년 전에 패터슨 대신 리를 기소함으로써 ‘정의의 실현’을 지연시킨 검찰이 늦게마나 제 할 일을 한 셈이다. 그러니 ‘재조사’ 운운하며 검찰을 압박할 것만도 아니다. 피해자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는 패터슨의 1심 선고 직후 “이렇게 19년 만에 범인을 잡아주시고, 20년형이 법정최고형이라니, 너무 감사하고 마음이 후련하다”고 검찰에 고마움을 전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패터슨은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이 부당하다며 서울고법에 항소했다. 아무래도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패터슨의 유죄를 확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검찰의 어깨에 달렸다. 19년 전 저지른 잘못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무작정 몰아붙이는 게 능사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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