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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개성공단 비상계획 매뉴얼'은 작동 안했다

입력 : 2016-02-12 18:43:21 수정 : 2016-02-13 10: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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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때 만든 계획에는 시설·설비 불능화 조치 포함”/ 철수 통보 과정에 시간 없어… 입주기업들 ‘허둥지둥’ 귀환/ 정부 유사시 준비 미흡 비판 북한이 개성공단 내 우리 인력 전원 추방 및 자산동결 조치를 취했으나 유사시에 대비한 정부의 비상계획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기에 앞서 여파와 파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전직 고위 관료는 12일 “이명박정부에서 처음 만든 개성공단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는 북한의 자산동결 조치도 포함돼 있다”며 “북한이 우리 자산을 동결하는 즉시 전력·용수·통신 등 기간 시설은 물론이고 공단 기업의 기계와 설비 등에 대해서도 ‘불능화 조치’를 취한 뒤 철수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안갯속 ‘통일’ 우리 측 인원 전원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다음날인 12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이 안개에 휩싸여 있다.
파주=연합뉴스
시설·설비·기계 ‘불능화 조치’는 단순한 봉인·폐쇄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봉인은 북측이 장치를 떼어내면 사용이 가능하지만 ‘불능화’는 원상복구가 영구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기계와 시스템 등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이 전직 관료는 “이명박정부 당시 비상계획을 세운 것은 북한이 먼저 우리 정부를 압박해 공단 문을 닫는 상황을 전제한 것이지 우리 정부가 먼저 공단을 폐쇄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며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이후 상황에 대한 준비를 치밀하게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단가동 중단 결정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박근혜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대북 제재이자 공단의 영구 폐쇄도 불사한 단호한 대응이다. 하지만 정작 공단 가동 중단에 따른 철수→폐쇄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제대로 챙기지 못한 셈이다. 준비가 안 된 채로 공단 폐쇄 상황에 직면한 정황은 여러 군데서 드러난다. 개성공단에 용수를 공급하는 수자원공사가 취·정수 시설 불능화 조치를 하지 못한 채 허둥지둥 쫓기듯 귀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일반 입주기업의 기계·부품·설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개성공단 전면중단 입주기업 비상총회에서 한 참석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다.
남정탁 기자
업종별로 보면 개성공단에서 조업 중이던 123개 입주기업 중 섬유가 73개, 기계·금속 23개, 전기·전자 13개, 화학 9개 등이다. 개성공단 업무에 깊숙이 관여한 정부 소식통은 “기업인은 자신들 자산인 기계와 설비를 망가뜨리는 불능화 조치 이행에 소극적”이라며 “우리 정부 결정에 대한 북한의 반격이 예상보다 빨랐다고 해도 우리가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을뿐더러 해야 할 비상계획을 실천하지 않은 것은 사태를 안일하게 봤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해 있던 한 섬유업체 관계자가 12일 서울 성동구 창고에 쌓아둔 개성공단 생산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이 갑자기 추방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완성품 위주로 일부 제품만 겨우 챙겨 나왔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철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업인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은 점과 우리 기업의 차량과 인원을 제한한 게 되레 기업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홍용표 통일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3년에 사실상 (우리측 인원에 대한)억류사태까지 갔었다”며 “북한에 미리 (정부 결정이)알려지는 경우에는 북한의 사전조치로 인해 우리 국민의 신변에 굉장히 심각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기업인에게 통보하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 재산도 고려하고 가능하면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첫 번째는 국민 안전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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