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이런 식으로 정감 나는 문구를 넌지시 내밀어주고는 했어요. 누구든 절대 무심히 대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캄캄한 밤에 찾아오는 분들에겐 특별히 불빛을 반짝이며 “속상해 하지마”, “많이 힘들었지”라고 속삭였어요. 오지랖도 넓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혹시나 ‘세상 참 살기 싫다’고 저를 찾아 온 분들이 계시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11일 한 시민이 다리 양 난간에 ‘속상해 하지마’ 등 투신 자살을 막기 위한 문구가 적힌 서울 마포대교 위를 걸어가고 있다. 이제원 기자 |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저는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선정된 문구를 보여드리기만 하면 됐어요. 이런 식의 자살예방 캠페인은 세계 최초라네요. 그래선지 2013년 해외 유수 광고제에서 상을 37개나 받았어요. 시도 자체가 새로운 데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호평과 함께요.
그런데 말이죠,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마음 같지 않더군요. 제가 그냥 가만히 서 있던 2011년에는 한강으로 뛰어든 분이 11명(사망 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 15명(〃 6명)으로 늘더니 2013년 93명(〃 5명), 2014년 184명(〃 5명)으로 폭증했어요.
사람이 오갈 수 있는 서울의 전체 한강 다리(27개)에서 2014년 한 해 투신 (시도)한 사람이 396명(사망 11명)인데 절반(46.5%) 가까이가 투신장소로 저를 택한 셈입니다.
연세대 이수정 교수(심리학)는 “심리학에 특정 단어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되레 더 많이 떠올리는 백곰효과(White Bear Effect)라는 것이 있다”며 “자살을 하지 말라면서 다리를 꾸며 놓으니 사고를 부추긴 꼴이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애초 난간을 높이는 등의 물리적 조치를 병행했어야 하는데 감성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키운 감이 있다”(국립중앙의료원 김현정 전문의)는 겁니다. 물론 난간을 높인다고 끝난 게 아닐 테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누구든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을 상담 창구가 대대적으로 확충돼야 한다”는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의 조언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아요.
11일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자살방지 문구와 SOS생명의 전화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이제원기자 |
캬∼ ‘사랑대교’라. 마포대교에 가는 그 누구든 사랑이 싹트고 꽃을 피운다니,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네요. 그런 다리로 거듭나는 게 새해 소망입니다.
김선영·김라윤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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