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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난 뒤에야 사랑을 알 수 있다

입력 : 2016-02-11 19:45:29 수정 : 2016-02-11 19: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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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영옥 4년 만에 펴낸 장편 ‘애인의 애인에게’ 도시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주로 천착해 온 소설가 백영옥(42)이 4년 만에 펴낸 새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예담)는 통속적이지만 절실한, 사랑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이다. 이 경우 ‘통속’이란 싸구려라는 의미가 아니라 널리 알려진 대중적인 것이라는 의미인데, 기실 알려져 있다고 믿는 만큼 모르는 게 더 많은 것이 남녀의 ‘사랑’이다.

이정인, 장마리, 김수영. 백영옥은 이 세 여성을 뉴욕으로 불러내 그곳에서 조성주라는 남자를 매개로 그들의 갈망과 욕망, 좌절과 연민을 이 소설에 담아냈다. 이들이 공통으로 엮인 분야는 비주얼 아트. 조성주는 사진을 찍고 장마리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갤러리스트이며, 김수영은 비주얼 아트를 강의하는 강사요, 이정인은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그 강의를 듣던 여성이다.

4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펴낸 소설가 백영옥. 그는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고 썼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인은 뉴욕 지하철에서 오르한 파묵의 소설 ‘순수박물관’을 읽으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핼러윈 복장 뉴요커들 사이에 앉아 있는 남자 조성주를 보고 마음이 움직인다. 서둘러 아마존에 주문해 읽어본 그 소설은 삶의 조건이 뒤바뀌는 어느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 때문에 모든 것이 완벽했던 삶에 균열이 생기는 찰나에 대한 이야기. 정인은 마리가 성주와의 이별여행 때문에 비운 집에 한 달간 세 내어 들어가서 짝사랑하는 남자의 흔적과 체취를 들춘다.

마리는 이민 2세대. 부모는 이민 와서 각자 다른 상대와 사랑하다 이혼했다. 아버지 친구인 목사 가정에서 아홉살 때부터 살았다. 아름답지만 결핍이 많은 존재다. 그네에게 조성주가 도발적으로 접근해 동거까지 하게 됐다. 그들의 사랑은 노골적이고 솔직한 육체의 접촉으로 소설에서 자주 묘사된다. 마리에게 그 접속은 사랑의 진정한 다른 이름이었지만, 성주도 그러한지는 그네에게 의심스럽다. 실제로 성주는 마리와 살고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긴 했다.

수영은 NYU 부설 아카데미에서 비주얼 아트를 강의하는 강사였는데 그 강의를 듣던 조성주는 그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수영은 잠시 마음이 흔들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고백을 수용한 것도 아니다. 수영은 쌍둥이를 유산하고, 그네의 남편은 그 유산 소식을 다른 여자의 침대에서 들었다. 마리는 조성주의 연인 수영을 찾아와 연적의 실존을 확인한다. 백영옥은 이 대목에서 “아이를 잃은 여자가 남편을 잃은 여자에게, 남편을 잃은 여자가 아이를 잃은 여자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마리는 자신의 남자를 수영에게 뺏겼다고 믿지만, 수영 또한 자신의 남편으로부터 소외당한 존재이다. 정인은 이 두 여성을 연민으로 감싼다. 마리가 성주를 위해 뜨다 만 스웨터를 마리를 위해 완성하고, 수영을 위해서는 유산한 쌍둥이의 스웨터까지 짜서 보낸다. 여성들끼리의 무한한 연대요 연민이다. 백영옥이 설정한, 남자로부터 받는 상처와 실연의 피안이다. 작가는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모른다. 남자가 여자를 안다고 말하는 건 여자에 대한 환상을 믿는단 뜻이지 실체에 접근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분명 같지만 다른 존재인 건 맞다. 다르다는 부분을 확대해 젠더의 피안으로 숨을 것도 없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공통 기반으로 파악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야말로 설득력을 지닌다.

“사랑이 끝난 후에야 우리가 사랑의 시작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에야 우리가 사랑에 대한 오해를 넘어 이해의 언저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이 끝났을 때만이 우리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을 남길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인간은 각자의 사랑을 할 뿐이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한다. 그는 그의 사랑을 한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할 뿐, 우리 두 사람이 같은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나 외로워 내 그림자라도 안고 싶어졌다.”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2008년 ‘스타일’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스타작가 반열에 올라선 백영옥은 “내가 본 실패에는 늘 아름다움이 있었다”면서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위대한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될 수 없었던 한 사람”으로 정의하길 좋아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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