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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우리 사회의 ‘장그래’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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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10 20:45:01 수정 : 2016-02-10 20: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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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이후 노동 유연성 위해
저임금의 비정규직 양산
이제 ‘값싼 인력’ 인식 바꿀 때
동일노동 동일임금 도입해
비정규직 차별 없애줘야
1998년 3월2일로 기억한다. 첫째 아들이 태어난 날이다. 기쁨을 회사 선후배들과 나눌 수가 없었다. 회사 측이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을 통보한 날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회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한 선배 한 분이 떠나갔다. 선배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회오리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비겁한 안도감을 느꼈음을 숨길 수 없다. 사회생활 5년차로서 그때 처음으로 2차 사회집단의 냉엄한 현실을 경험했다.

대한민국에서 구조조정은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군살을 빼고 한계사업을 정리한다는 그럴싸한 의미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집단해고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국가적 구호와 같았다. IMF가 구제금융 조건으로 내세운 요구 사항 중 하나이기도 했다. 쉽게 인적자원을 늘리고 줄임으로써 외부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한다는 노동시장 유연화. 비정규직 양산의 시작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4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취업한 청년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에 취업했다.

박희준 논설위원
비정규직은 저임금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지난달 초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8월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은 269만6000원과 146만7000원으로 차이가 컸다.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놓을 때, 비정규직 상대 임금은 54.4에 그친다. 문제는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상대 임금은 2011년 56.4, 2013년 56.1, 2014년 55.8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저임금의 비정규직 채용을 계속 늘려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 대상에 23살짜리 사원까지 포함돼 논란이 됐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찍어서 내보낸다는 ‘찍퇴’라고 말이 많았다. 대상에 오른 이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한때 잘나가던 회사가 비정규직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고 퇴직을 강요한다고 주장했다. 몇 년째 정년퇴직 등으로 자리가 비면 비정규직으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에 비정규직 채용은 달콤한 유혹이다. 정규직 전환의 꿈을 내세워 임금은 적게 주면서도 실컷 부릴 수 있다는 생각 탓이다.

요즘 우리 상황을 IMF 위기 직전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노동개혁을 놓고 보면 정말 그렇다. 당시 정부는 정리해고제, 변형시간근로제, 근로자파견제를 밀어붙였다. 1996년 12월 여당 단독으로 노동법 개정안을 처리했으나 야당과 노동계 반발로 시행이 무산되었다. 결국 IMF 사태로 타의에 의해 노동개혁에 나서야 했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도 지난달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 선언으로 위기를 맞았다. 노동 관계법은 대통령 호소에도 국회를 통과할 기미가 없다.

노동시장 유연성은 필요하다. 경직된 근무행태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 줄곧 카톡만 하는 직원을 해고하는 데 5년이나 걸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들의 그릇된 행태가 불신을 낳았다. 기업이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사정이 좋아졌다고 우선고용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질 못했다. 기업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저임금 인력 확보 수단으로만 여겼다. 유보금을 쌓아놓고 비정규직 채용에 열을 올리면서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해 왔다.

이제 인식을 바꿀 때다. ‘노동 유연성=저임금자 양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선진국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면서도 고용불안에 저임금까지 감수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 비정규직은 복지혜택조차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 고용은 불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돼야 한다. 비정규직 생활 안정은 소비 촉진으로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일본도 최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추진 중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의 공약 중에 무상 대학교육처럼 현실성 없는 내용이 많다.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만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는 주당 40시간 이상 일하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열심히 일하는 비정규직도 빈곤에 빠지지 않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가는 길이다.

박희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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