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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 많은 그녀들의 ‘창작 공간’ 엿보기

입력 : 2016-02-05 17:43:48 수정 : 2016-02-05 17: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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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즈 사강
도도·단정한 겉모습과 달리
작업실은 온통 담뱃불 자국
타니아 슐리 지음/남기철 옮김/이봄/1만45000원
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타니아 슐리 지음/남기철 옮김/이봄/1만45000원


신간 ‘글쓰는 여자의 공간’은 유명세를 떨친 세계 여성작가 35인의 은밀한 시간들을 전해주는 보기드문 책이다. 가정 주부로서, 때로는 가정을 박차고 나와 어찌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한 그들만의 고독하지만, 열정의 공간들을 엿볼 수 있다.

‘슬픔이여 안녕’으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의 모습에는 단정함과 무례함이 뒤섞여 있다. 하얀 블라우스에 다소곳히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는 정숙함 그 자체로 보였다. 반면 그녀의 작업실에는 온통 담뱃불 자국 투성이였다. 그녀의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야트막한 탁자가 너무 지저분했다고 혀를 끌끌 찼다. 저런 자세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의문스러울 정도였다고 입을 모은다. 

1954년 불과 열아홉 살 때 두 달만에 쓴 장편소설로 단번에 유명해진 프랑수아즈 사강은 그저그런 상류층 부르주아 처녀였다. 빈둥거리며 카페에서 와인 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수많은 작품에는 번뜩이는 기지와 위트가 스며있었다. 그녀의 출세작인 ‘슬픔이여 안녕’은 적나라한 인간 묘사로 유명한 작품이다.

소설 속의 섹스 행위는 그녀의 삶과 동일시 됐다. 스물두 살이던 1957년 스피드광이었던 사강은 엄청난 교통사고에도 기적같이 살아났다. 극심한 고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평생 모르핀을 맞아야했다. 도박에도 탐닉했다. 룰렛 게임으로 당시 돈 8만 프랑이라는 큰 돈도 벌었다. 평자들은 그녀를 ‘매력적인 작은 괴물’로 묘사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는 와인 카페를 글쓰기 공간으로 삼곤 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거나 식사를 하고 애인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나 사랑을 속삭였다. 물론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했던 시절이라 카페가 집보다 난방 시설이 좋기도 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가정 잡일을 거부한 여성이었다. 요리를 비롯한 어떤 살림살이도 하지 않았다. 가사야말로 여자들의 자유와 삶, 글쓰기를 방해하는 덫이라고 비난했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는 실용적인 여자였다. 작품을 출판사에 보내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온실을 다시 세우거나 로지아를 만들었다. 그녀는 신에게 사명을 받았다거나 신의 광채를 보았다는 작가들과는 전혀 달랐다. 자기 직업을 과대평가하지 않았으며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여성으로선 인기없는 냉정한 여성이면서도 자기 포장을 거부한 담백한 스타일이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는 첫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원고를 75쪽까지 쓰고 나선 팽개쳐버렸다. 줄거리가 너무 평이하다는게 집어던진 이유였다.

‘온기없는 냉방에서 의자의 끄트머리에’ 앉아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곤 했다. 불안과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살인 행위를 묘사하고 영혼의 심연을 샅샅이 비추려면 작가 자신도 불편한 환경에서 긴장과 불안 속에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프로다운 면모일까.

조르주 상드(1804~1876)는 연애하고 돈벌기 위해 글을 썼다는 평을 듣는다. 6주에 한 번씩 120쪽 분량의 원고를 꾸준히 출판사에 보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그 돈으로 연애하고 글을 썼다. 아마 당시 유명인 가운데 그녀와 연애 안해본 남자는 없을 정도였다. 6살 연하 남자인 대음악가 쇼팽과의 염문은 특히 유명했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여성 소설가 토니 모리슨(85)은 항상 새벽 4시부터 글을 썼다.

어린 두 아들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이 시간밖에는 없었다. 이런 습관은 혼자 살 때까지 이어졌다.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는 불과 서른네 살에 사망한 불운의 작가였다.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길 위에서 보냈다. 자기 차였던 메르세데스 벤츠나 포드 컨버터블 안에서, 텐트에서, 때로는 당나귀를 타고 여행했다. 그녀에게 글을 쓰는 데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을 주제로 수백편의 여행 기록과 소설, 시, 편지, 서평을 써냈다.

이 책에 소개한 여성들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사람들이다. 그밖의 많은 여성 작가들은 글을 쓸 장소가 없었거나, 난방 시설이 열악했거나, 이래저래 여건이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녀들은 책상 대신 주방 식탁에서, 화장실 변기 위에서 글쓰기의 열망을 꽃피웠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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