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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복음 가면, 복지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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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04 21:22:00 수정 : 2016-02-04 2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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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공학 준동 알리는 여야의 ‘착한 공약’ 물결
4·13 총선 유권자가 꿩 잡는 매처럼 날카롭게 선심공세의 허실 추궁해야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다. 선거철 정치판도 그렇다. 표만 긁어모을 수 있다면 양잿물도 마다하지 않을 철면피가 널려 있다. 엊그제 미국 아이오아 코커스에서도 선거공학의 괴력을 절감했다.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의 대세론을 흔든 것이 코커스 개표 결과다. 순위만 따질 계제는 아니다. 눈여겨볼 것은 따로 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이다. 그는 유난스럽게 교회를 찾고 성경을 읽었다. ‘복음 전도사’ 행세였다. 세상이 아는 트럼프는 복음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지난해 그랬듯이 “멕시코 이민자는 강간범” 따위를 외치는 편이 외려 트럼프답다. 그런데, 복음 가면을 썼다. 왜? 선거공학을 빼놓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트럼프의 롤 모델은 조지 W 부시이기 십상이다. 부시는 1999년 아이오아에서 대권 교두보를 확보했다. 코커스 전날 토론회에서 어떤 정치철학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지역색에 부합하는 답변을 내놓은 것이 주효했다. 이렇게 답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심령을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부시의 답은 사실 동문서답이다. 반대파는 정치와 종교를 구별하지도 못하느냐고 성토깨나 했다. 하지만 아이오아의 기독교 복음주의 유권자들은 기뻐하며 표를 몰아줬다. 결국 그것이 2000년 미국 대선 향방까지 갈랐다. ‘드라마여, 다시 한 번’, 트럼프는 이번에 교회 신도들과 악수를 하면서 그렇게 꿈꿨을 것이다. 비록 최종 결과는 기대와 달라서 테드 크루즈에 뒤진 공화당 2위에 그쳤지만.

대한민국도 선거철을 맞았다. 막중한 입법 권력이 걸린 4·13 총선이다. 새누리당은 어제 ‘일자리 중심 성장’이란 총선 공약기조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1일 ‘더불어성장론’을 제시했다. 국민의당은 ‘공정성장론’이다. 하나같이 착한 단어들의 조합이다. 선거공학이 꿈틀거린다는 방증이다. 가면 행렬이 시작된 것이다. 트럼프의 가면놀이를 곱씹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야는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다. 좌판에 깐 공약도 뜬구름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확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무책임·무분별한 복지공약 경쟁이 벌어진 2012년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는 130조원 넘는 공약 보따리를, 문재인 후보는 190조원 넘는 보따리를 풀었다. 판도라의 상자였다. 작금의 보육대란이 어디서 튀어나왔겠나. 박 대통령은 임기 1년차에 기초연금제도와 관련해 “어르신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이런 유형의 복지재정 잡음은 부차적인지도 모른다.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는, 보다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부작용도 엄존한다.

트럼프가 복음 가면을 계속 쓰든 말든 그것은 강 건너 불이다. 꼴사나우면 안 봐도 그만이다. 하지만 이 땅의 포퓰리즘 소동은 안 볼 도리가 없다. 그 피해권에서 벗어날 길도 없다. 어찌해야 하나. 꿩 잡는 게 매다. 유권자가 매가 되는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의회 연설 도중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돌출성 야유를 받고 “두 얼굴이 있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자리에 왜 이 얼굴로 나왔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같은 야유에 격조 있게 응수할 수 있는 정치인이 링컨 외에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복음 가면을 쓴 트럼프도, 선심·복지 가면을 쓸 국내 정치인도 입을 벙긋하기 어렵다.

저들이 두 얼굴로, 가면놀이로 사익을 취하게 방치하는 것은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역사에 누를 끼치는 죄악에 가깝다. 개인 양심이 걸리는 복음 가면보다 국가 운명이 걸린 복지 가면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총선 유권자가 할 일은 자명하다. 그 누구든 선심 공약을 들이대면 먼저 “뭔 재원으로”를 물어야 한다. 노동개혁을 비롯한 국가 난제에 대한 실증 해법을 요구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유권자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유권자가 얕보이면 정치인은 저급한 쇼를 펼치게 돼 있다. 불변의 법칙이다. 단호해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의 복음 가면에 흔들리지 않은 아이오아 유권자처럼 결기를 보일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대한민국 정치도 달라진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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